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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 부대 철군 득보다 실이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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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이라크에 파병돼 있는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논란이 됐던 철군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됐다. 자이툰 부대는 현재 쿠르드 족이 사는 이라크 북부 키르쿠크 지역에서 모범적인 재건.복구 활동을 해 주민의 호응을 받고 있다. 2년여 파병 기간에 60여 개 초.중등학교를 지어 어린이 교육을 부활시켰고, 현지인을 위한 새마을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자이툰 부대 기술교육센터에는 중장비 운전, 제빵, 자동차 수리, 가전제품 수리 등의 과정이 개설돼 있다. 자이툰 부대 병원은 부대원 외에도 하루 150명 이상의 현지인을 진료한다. 이런 민사작전은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국.영국 등 동맹국 사이에서도 모범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정부는 2년 반 전 3800명이었던 자이툰 부대 병력을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내년 4월에는 1200명 수준으로 감축한다고 한다. 현재 정치권.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자이툰 부대 파병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는 점을 들어 내년에는 철군 계획을 수립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병과 철군의 의사결정은 좀 더 전략적이며 장기적인 국익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다.

이라크 파병은 우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의 의무와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가 있다. 6.25 전쟁 때 동맹국들의 도움으로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갖게 됐다. 개인이든 국가든 과거 어려울 때 신세 진 일이 있다면 후일 능력이 생겼을 때 갚아야 한다.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적극 나설 때가 됐다. 그 결과 이라크 재건 과정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해도 국제사회는 한국이 이라크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이라크 파병은 앞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 수행해야 하는 우리 군의 전쟁 수행 능력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자이툰 부대는 사단급 병력으론 월남전보다 먼 최장거리의 해외 파병이다. 이는 우리 군에 육.해.공 합동작전과 전시 군수지원, 동맹국과의 연합작전 수행에서 실전경험 축적이란 학습의 장을 제공한다. 더욱이 이라크 파병은 미국의 군수 지원 없이 한국군 독자적으로 이뤄진 첫 해외 파병이다. 6개월마다 파병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1만5000여 명(연인원)의 장병은 전술적 감각과 연합작전 능력 면에서 국군 혁신에 선도자 역할을 할 것이다.

세상 일에는 명분과 실리가 공존한다. 국가든 개인이든 처신에 따라 둘 다 챙길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다. 정부는 자이툰 부대 파병을 결정할 때 너무 반대여론 눈치만 보다 결정 시기를 놓치고, 파병지역을 선정할 때도 위험지역을 지나치게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파병하면서도 동맹국으로부터 고맙다는 말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때 우리는 일본이 즉각적인 반응으로 동맹 외교를 한층 강화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그 후 2년 반 동안 일본이 미국과 가까워진 거리만큼 우리는 멀어졌다. 이런 실패를 철군 과정에서도 반복할 수는 없다. 이라크 파병 때와 같이 철수에서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원활하지 못한 대미 관계에서 그나마 이라크 파병이 갖고 있는 긍정적 효과를 결코 소홀히 취급해선 안 된다.

문근찬 한국싸이버대 교수·벤처경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