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모르는 여름철새" 왜가리 30마리|과천대공원서 둥지 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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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과천 서울대공원 내 큰물새장의 꼭대기에 여름철새인 왜가리 30여 마리가 날아들어 둥지를 틀고 겨울을 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황새 목 백로과에 속하는 왜가리는 원래 4월께 우리나라에 날아와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면 남쪽으로 날아가는 철새.
『84년 겨울인가 왜가리 두 쌍이 큰물새장 주위를 기웃 거리 길래 길 잃은 미 조로만 알았죠. 그런데 다음해부터는 더 많은 왜가리들이 모여들어 아예 물 새장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겨울을 나더군요. 무허가 건물인 셈이죠.』
서울대공원 김정만 동물부장은 이들 왜가리가 기후변화로 겨울철의 날씨도 견딜 만 해진데다 사냥을 당할 염려도 없고, 먹이도 그런대로 풍족한 탓에 4계절을 지내는 텃새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새가 텃새로 변하는 것은 최근 들어 세계도처에서 종종 일어나는 현상으로 한강에도 겨울철새인 청둥오리·가마우지 등 이 여름을 보내기도 한다는 설명.
그러나 왜가리들이 하필이면 왜가리·백로·두루미 등 수백 마리의 물새들이 갇혀 있는 물 새장 꼭대기에 집을 지은 것은 새장 안의 새들과「형제애」를 느낄 수 있고 높이가 35m에 이르러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란 것이 대공원 측의 추측이다.
『이들 왜가리덕분에 관람객들로부터 별별 소리를 다 듣죠. 안에 있던 새들이 탈출해 바깥에다 집을 지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가장 많습니다.』
그러나 이곳 직원들은 귀찮다고 여기는 대신 어느 동물원에서도 보기 힘든「진짜 구경거리」라고 생각한다.
새장 안의 새들은 사육사가 주는 사료·생선 등을 받아먹기만 하면 되지만 바깥 왜가리들은 직접 먹이를 구해야 한다.
대공원내의 인공저수지나 동물병원 앞 호수의 물고기가 주 대상이고 인근청계산 숲 속의 개구리·곤충 등을 잡아먹기도 한다.
특히 물 새장 바로 옆에 있는 돌고래 장·물개 장에서 돌고래나 물개가 미처 받아먹지 못한 생선을 가로채는 것도 이들의 식사요령.
이 같은「얌체 파」도 있지만 더러 인근 쓰레기통에서 먹다 남은 핫도그조각이나 사육사가 버린 생선찌꺼기 등을 뒤지는「거지 파」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고달픈 먹이 구하기가 끝나면 왜가리들은 새장 안의 새들에게 보란 듯이 주위를 힘껏 날아오른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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