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 국교생 살릴 수 있었는데…/「눈먼 수사」 세차례 놓쳤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경관 잠복하고도 검거 허탕/가족들 공개수사 요구 묵살/가짜 돈가방 가져간 범인 “형도 유괴하겠다” 협박
서울 구정국교 이형호군(9·3년) 유괴살해사건은 그동안 가족들의 요구로 비공개수사를 해왔다는 경찰의 발표와는 달리 범인을 세차례나 놓친 후인 지난달 하순부터 가족들이 세차례나 공개수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수사편의를 위해 이를 묵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유괴범은 2월중에만 세차례나 돈을 받기 위해 나타났으나 코앞의 범인을 놓친 것으로 밝혀진데다 부검결과 형호군은 사체발견 1주일전인 3월6일을 전후해 질식사한 뒤 유기된 것으로 추정돼 경찰·은행이 치밀하게 대처했으면 범인검거는 물론 형호군의 목숨도 건질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형호군 주변인물중 성문이 비슷한 이모씨(29)등 2명을 용의자로 보고 부천의 이씨집을 압수수색하는등 집중조사를 벌이는 한편 이완구 서울시경 3부장(경무관)을 수사본부장으로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범인검거에 현상금 1천만원과 1계급 특진을 내걸었다.
◇공개요청=형호군의 아버지 이우실씨(35)는 15일 『가족측은 지난달 24일부터 3월초 사이에 세번이나 경찰에 공개수사를 요청했지만 경찰이 이를 묵살했다』고 밝혔다.
이씨에 따르면 범인이 마지막 협박전화를 건뒤 10일이 지난 지난달 24일 경찰에 『차라리 공개수사를 하면 새로운 목격자나 제보가 들어와 사건해결이 쉽지 않겠느냐』고 공개수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지금까지 시민제보로 유괴사건이 해결된 경우가 없고 형호군의 생명도 위험하다』고 공개를 만류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어 3일을 전후해 두차례 더 공개수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추가협박=유괴범은 지난달 13일 양화대교 부근에서 돈가방을 뺏어 달아났으나 신문지로 만든 가짜 지폐 뭉치임을 알아낸 직후 두차례 전화를 걸어 『빈가방은 잘 받았다』『형호만으로 안된다면 장남(11)도 납치하겠다』고 협박했다.
가족들은 협박전화가 걸려온 뒤 장남의 등·하교길과 학원에 일일이 따라다니는 등 보호를 계속하고 있다.
◇검거실패=지난달 13일 오후 8시쯤 이군의 아버지는 범인 요구대로 몸값중 5천만원을 현금대신 신문지로 만들어 가방에 넣은 뒤 양화대교 남단 첫번째 가로등 배전반에 놓았다.
범인은 가방이 놓인 직후 승용차를 타고 가짜 돈뭉치가 든 가방을 낚아채 달아났으나 경찰은 현장에서 2백m쯤 떨어진 곳에 잠복해 있다 범인을 놓쳤고 범인이 타고온 승용차의 번호판·차종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또 지난달 19일 오후 3시40분쯤 상업은행 상계동지점에 바바리코트 차림의 20대 남자가 나타나 창구직원 임모양(26)에게 범인이 몸값을 입금하도록 한 구좌에서 7백만원을 인출하려다 임양이 『사고계좌인 것 같다』고 말하자 그대로 달아났다.
이에 앞서 지난달 1일 오전 2시30분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부근 약속장소에 몸값이 든 가방을 갖고 나간 어머니 이씨주위에 범인으로 보이는 20대 청년이 배회해 이씨가 『범인인 것 같다』고 잠복경찰에게 신호를 보냈으나 경찰은 골목길로 뛰어달아난 범인을 놓쳤다.
세차례 나타난 20대 남자는 모두 유괴범의 인상착의와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범인을 놓친 사실 모두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