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꿈과 현실여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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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2일 국토개발연구원이 내놓은 제3차 국토종합개발계획 시안은 일개 연구기관이 임의로 그려본 청사진이 아니라 건설부가 앞으로 10년간 추진할 국토개발계획의 모태로 삼기 위해 용역을 주어 마련한,말하자면 실천의지가 실린 계획안이란 점에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시안에 접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소감은 솔직히 말해 내용이 지나치게 이상에 치우친 나머지 비현실적이고 공소한 계획이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물론 계획 자체가 10년 뒤를 내다보는 중기계획이고 꿈을 크게 갖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이번 계획안이 담고 있는 국토개발의 기본구상에는 공감이 가는 대목이 적지 않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및 각종 기능집중을 억제하고 지방을 균형있게 육성하겠다던가 지난 30년간 경제개발추진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충청 및 호남지역을 새로운 산업지대로 조성하겠다는 내용 등은 그동안 거듭된 논의를 통해 이미 폭넓은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들이다. 또 주택공급을 대폭 늘려 2001년의 주택보급률은 92.6%로 끌어올리겠다든가 고속도로와 전철 등 사회간접시설을 대폭 늘려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대로 압축시키겠다는 설계는 실현만 될 수 있다면 모두가 바라는 미래상이다.
남북교류에 대비한 경의선·경원선의 복구,여가공간의 조성,정보통신망의 구축,환경오염문제,토지투기 대책 등에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이 계획안이 미래의 여건변화까지를 염두에 두고 꽤 정성들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에 관한한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안이 비현실적이란 느낌을 주고 의욕만 앞선 장미빛 청사진이라는 등의 회의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계획의 실천을 위한 구체적 수단이 짜임새 있게 제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이 계획을 실천에 옮기자면 10년간 2백62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처럼 방대한 자금을 어떻게 하면 조달할 수 있다는 설득력 있는 방안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물론 계획안에는 지방채 발행,민자유치,새로운 세원 발굴 등의 막연한 방법이 나열되어 있지만 이 정도의 설명으로 「돈문제는 걱정없겠구나」하고 납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문제는 전체 자원배분의 측면에서도 면밀한 검증을 거쳐야 하며 앞으로 10년간 우리가 동원할 자금능력과 다른 부문간의 연계 등을 감안,적어도 실현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골격만이라도 제시돼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이번 계획을 황당하게까지 느끼게 하는 것은 25개의 고속도로를 10년간 건설하겠다는 내용이다. 이 계획대로라면 매년 고속도로 2개 이상이 늘어나는 셈이다. 그동안 우리가 힘겹게 건설한 고속도로 총연장이 1천5백㎞ 정도인데 앞으로 10년간 2천1백㎞를 추가로 건설하겠다니 자금은 고사하고 그를 뒷받침할 인력과 자재 등의 수급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 얘기다.
수도권 집중억제는 이미 60년대부터 제기 되어온 문제인데 이 문제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방법도 특별히 눈에 띄는게 없다.
우리가 보기에 이 문제는 산업시설,행정의 지방분산과 함께 교육의 지방화가 중요한 요소인데 이번 계획안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제시가 없는 것이 아쉬움은 물론,한쪽에서는 첨단학교의 수도권 증설이 논의되는 마당이라 갈피를 잡기 어렵다.
국토계획이 계획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려면 현실적 여건과 바탕을 전제로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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