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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자녀 볼모 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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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10시 충남 서천군 장항읍 화천리 군민체육관. 장항초등학교 등 학생 400여 명이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도 체육관 마룻바닥에 앉아 학원강사의 지도에 따라 요가를 하고 있었다. '장항산단 조기착공을 위한 학부모 대책위원회'가 자녀들을 이틀째 학교에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학교에 가지 않은 학생은 2개 학교 전교생(1199명) 가운데 55%(664명)로, 수업거부 첫날인 18일과 비슷했다.

등교하지 않은 학생 대부분은 이날 군민체육관에서 학부모 대책위가 마련한 대체수업을 받았다. 수업내용은 영화감상.영어회화.요가 등이었다. 나머지는 집에서 머물렀다.

등교거부는 17일 장항과 장항중앙초교 학부모 운영위원 20명이 모여 결정했다. 이들은 군민의 생존권이 달려 있는 장항산업단지 조기착공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서는 등교거부 등의 강력한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학부모 대책위 정필국 위원장은 "군수가 단식농성까지 했는데도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정부를 향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역 교육계에서는 "지역 현안사업 해결을 위해 꼭 어린 학생까지 동원했어야 했나"하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장항초등학교 김종원 교장은 "주민들의 처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학생들에게 학습권은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천교육청 김기오 장학사도 "학생들이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수업"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은 이른 아침부터 군민체육관으로 달려가 학생들의 소매를 잡고 학교로 갈 것을 설득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장항.장항중앙초교 등 2개교는 이날 오후 20일부터 방학에 들어가기로 긴급 결정했다. 방학은 당초 28일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등교거부로 인한 수업파행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서천군과 주민들은 "낙후된 지역 발전을 위해 산업단지 조성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한다. 정부 발표만 믿고 17년이나 기다린 주민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아이들을 볼모로 설령 지역 현안을 해결한다 해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한 주민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김방현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