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학교폭력 중학생보다 심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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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 서울 성동구 A초등학교 6학년인 김모(12)군은 1학년 때부터 동급생들에게서 따돌림을 당했다. 또래보다 덩치가 작고 힘이 약했던 데다 수업시간에 소변을 못 가린 이유였다. 지난달엔 화장실에서 같은 반 5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의 부상을 당했다.

#2. 4월 전주의 B초등학교 5학년 쌍둥이 형제가 같은 반 강모(11)군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경찰 수사 결과 이들 쌍둥이 형제는 2년 전부터 강군에게 괴롭힘을 당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돌변한 것이다.

학교 폭력이 어린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만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이 올해 6월부터 두 달간 3910명의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생들의 학교폭력 피해자 비율이 17.8%로 조사됐다. 2001년 8.5%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전체 초등학생 400여만 명 중 71만여 명이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추정되는 셈이다. 청예단의 이정희 학교폭력 상담원은 "최근 3년 사이 초등학교 폭력 피해자가 급격히 늘어 하루 10여 건의 상담전화 중 30% 이상이 초등학생이나 부모들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며 "전치 3주 이상의 중상을 입은 경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여학생들의 학교폭력도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청예단이 1999년 조사에서는 가해자가 2.2%에 불과했지만 2006년 조사에서는 10.7%로 다섯 배가량 늘었다.

이처럼 학교폭력이 늘어나고 있지만 주변에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학생들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학교에서 폭행을 당해도 이를 알리지 않은 비율이 45.9%로 피해자 중 절반 가량이 친구와 부모 등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청예단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학교폭력 피해, 초등학생이 가장 심각''당하고도 말할 수 없는 학교폭력''여학생 학교폭력 지속 증가'를 '정해년(丁亥年.2007년) 학교폭력 3대 악재'로 규정하고 학교폭력 추방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다. 청예단 문용린 이사장(서울대 교육학과 교수)은 "초등학생의 학교폭력은 보복 경향이 높아 피해자도 잠재적인 가해자"라며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선 피해학생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신고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호 기자

◆ 청소년폭력예방재단=1995년 외아들을 학교폭력으로 잃은 김종기씨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비영리 공익단체로 청소년지킴이 운동을 비롯한 상담.교육 등 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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