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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지방 섭취를 줄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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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최근 미국의 뉴욕시 보건위원회가 인체에 해로운 트랜스 지방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면서 국민과 식품업계가 큰 혼란에 빠졌다. 이 조치에 따르면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은 물론 모든 뉴욕 식당이 내년 7월 1일부터는 트랜스 지방을 함유한 튀김 기름을 쓸 수 없고, 2008년 7월 1일부터는 모든 음식에 트랜스 지방 사용을 금지한다. 이러한 사실이 국내에 보도되면서 국민의 트랜스 지방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고 있다. 요즘 비만이나 성인병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것도 트랜스 지방과 관련한 것들이다.

트랜스 지방은 콩기름과 같은 액체 식물성 기름에 수소가스를 첨가해 고체로 만든 것이다. 마가린.쇼트닝 등 고체 형태의 이들 지방은 비싼 버터의 대체식품으로 개발됐다. 고소한 맛을 내고 식품 변질을 지연시키며 가격이 매우 저렴하다는 매력 때문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튀김과 빵, 도넛, 과자, 피자 반죽, 크래커 같은 가공식품은 물론 팬케이크 반죽이나 코코아 분말 등에도 쓰인다.

트랜스 지방은 체내에 들어가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낮추고 나쁜 콜레스테롤(LDL)은 증가시켜 갖가지 혈액순환 장애를 일으킨다. 영국 의학지인 란셋은 트랜스 지방을 2% 늘리면 심장병 발생은 25%, 당뇨병은 40%까지 높아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는 식품의 영양 표시 항목에 트랜스 지방 함량을 표기하도록 의무화했으며, 덴마크는 트랜스 지방 함량이 2% 이상인 가공식품의 유통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정은 어떤가. 한국인의 지방 섭취 비율은 20%로 서구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트랜스 지방 섭취량도 서구에 비해 낮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지방 섭취량이 적기 때문에 가공식품의 포화지방과 트랜스 지방에 대한 계몽과 규제 조치가 늦은 감이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트랜스 지방의 유해성만을 알리는 것은 가공식품 전체에 대한 혐오감과 공포감만 심어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정부와 식품업계.국민이 함께 트랜스 지방을 줄이는 노력을 먼저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아시아 최초로 콜레스테롤.포화지방과 함께 트랜스 지방 함량을 표시하는 '식품 등의 표시 기준'을 개정, 고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려면 성인은 물론 어린이까지 식품 성분 표시를 읽고 판단해 올바른 구매로 이어져야 한다. 적극적인 국민 교육과 홍보가 뒤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일례로 다국적 패스트푸드 업체의 제품에 들어있는 트랜스 지방 함량은 해당 국가의 정책이 강력할수록, 그리고 국민의 트랜스 지방에 대한 인식이 높을수록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음은 식품업계의 자성이다. 최근 몇몇 업체에서 트랜스 지방을 획기적으로 줄인 제품들을 출시했지만 이런 분위기가 전체 업계로 확산돼야 한다. 제조 공정 중에 트랜스 지방 발생을 최소화하는 기술 개발로 최근 2년간 일부 과자류는 트랜스 지방 함량이 40~45%가량 낮아졌다. 마찬가지로 모든 과자류 생산 업체나 패스트푸드 업체, 레스토랑 등 요식업체도 트랜스 지방이 적은 음식을 만들어 공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 스스로도 트랜스 지방을 먹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어린이들이 선호하는 식품 중에는 트랜스 지방이 다량 함유된 것이 많다. 비만 어린이가 계속 늘어나고, 당뇨병과 고혈압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에서 어린이에 대한 교육과 계몽은 매우 중요하다. 또 가정과 학교 식당에서도 조리할 때 트랜스 지방이 적게 들어간 음식을 만들도록 유도해야 한다.

강재헌 인제대의대 교수·가정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