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라!논술테마] 영역별로 짚어 보는 저출산 위기…과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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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자신을 보호할 만한 기계를 만들어 그 안으로 숨어버렸고, 세상은 '생존하라, 그리고 번식하라'는 유전자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생존 기계'로 가득 차게 됐다는 것이다.

동물은 유전자의 명령을 따르기 때문에 유전자의 존속에 해가 되는 짓, 즉 번식 거부나 새끼 살해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포유류나 조류의 경우 '한배의 새끼 수'는 대체로 일정하다. 여기에는 한정된 자원 환경에서 가장 많은 새끼를 얻기 위해 최적치를 고려한 진화 과정의 '숙고'가 반영돼 있다. 동물에게도 출산과 육아는 부모의 시간과 노력을 많이 요구한다. 따라서 자식이 많으면 건강한 성장을 막을 수 있다.

동물은 자신이 기를 수 있는 한계만큼만 새끼를 낳는다. 몸집이 큰 동물일수록 한배에 낳는 새끼 수가 적은 것도 자라는 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유동물은 특히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동안 배란이 억제돼 자연 피임이 되곤 한다. 젖먹이가 있는 어미가 새끼를 낳을 경우 둘의 생존이 모두 위협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부다처제를 이루는 유인원은 새로운 수컷이 기존의 대장 수컷을 밀어내고 암컷을 모두 차지할 경우 젖먹이를 모조리 살해한다. 암컷이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동안 임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 새끼를 죽여 암컷의 임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동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새끼 숫자를 조절한다. 비록 의식적이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려는 욕구와 혹독한 자연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생존 전략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셈이다.

사람이 아기를 한 명씩 낳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도 성장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투입되는 자원도 많다. 늘어난 양육비와 높아진 사교육비 부담이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출산율 저하는 우리 사회와 환경이 그만큼 척박해졌다는 증거일 수 있다.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생각 플러스:인간이 동물처럼 개체 유지를 위해 젖먹이를 살해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윤리적 관점에서 토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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