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의 암흑(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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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걸프전쟁은 과거의 여느 전쟁과는 달리 엄청난 공해라는 부작용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뉴스는 전황 중심이었다. 전술적으로 유전에서 흘려보낸 원유가 그 일대 연안에서 끈끈한 검은 파도를 일으킬 때 바다표범과 물새떼들이 기름범벅이 돼 몸부림치는 모습이나,불타는 유전에서 뿜어나오는 검은연기가 하늘을 뒤덮는 광경등 단편적인 뉴스가 간헐적으로 보도됐을 뿐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환경연구기관인 월드워치연구소는 최근 걸프전쟁이 초래한 환경파괴실태를 종합 정리해 전하면서 이대로 방치하면 수천명의 인명이 환경오염으로 죽어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외신이 전하는 이 연구소의 조사내용에 따르면 환경파괴는 원유유출과 유전방화 등으로 인류전쟁사상 유례없는 규모이고,그 영향이 걸프연안국들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과 인도 일대에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타고 있는 5백여군데 유전의 화염때문에 유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등이 대량으로 함유된 매연이 하루 2만5천t 가량씩 뿜어나온다. 터키에서 호르무즈해협에 이르기까지 1천6백여㎞가 매연구름으로 덮여 검은 비가 내리고 있다.
매연은 강산성비 뿐만 아니라 공기자체를 오염시켜 호흡기질환을 유발하고 있다. 무려 4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던 1952년의 런던스모그와 비슷한 농도의 유독가스에 오염돼 있는 절박한 실정인 것이다. 대낮에 밤중같은 암흑이 계속될 만큼의 짙은 매연은 대기온도를 섭씨 7∼8도 끌어내리기 때문에 기류의 변동을 가져오고 그 영향은 전지구적으로 파급될 우려도 있다. 그런데도….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국가들은 승전의 환희와 자신감에 도취해있고,전후 중동질서 재편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밖의 나라들도 전후복구사업에 어떻게 해서든지 한몫 차지해볼까 구실찾기에만 혈안이다. 전황보도에 그 위력을 과시하던 세계적 매스컴들도 파괴되고 있는 환경의 실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 같다.
그 엄청난 전쟁의 여파로 엉뚱하게 피해를 보고 있는 무고한 인명과 망가져가는 생태계는 외면당하고 있다. 그것이 현재는 비록 국지적인 현상이긴 하나 머지않아 우리 모든 인류의 재앙으로 엄습할 수도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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