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투데이

6자회담에 큰 기대 갖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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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의 언론과 싱크탱크들은 6자회담 재개 소식에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6자회담은 다른 나라들에서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6자회담의 성과에 이처럼 기대감이 낮아진 것은 회담의 형식이 잘못돼서가 아니다. 그사이 워싱턴에서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실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강경파와 온건파 모두 평양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게 된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핵무기 개발을 최고의 국가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 핵무기는 미국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은 한편으로는 맞다. 그러나 북한이 국방이나 안보불안 때문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면 6자회담에서 미국이 제안한 안전보장에 관심을 가졌어야 할 것이다. 북한은 그러지 않았다. 핵무기 개발은 미국의 공격에 대한 억지력을 확보한다는 것 이상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날이 막강해지고 있는 중국에 합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도 있다. 한국이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의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는 세계무대에서 퇴색해 가는 북한 정권의 합법성을 시위하기 위한 목적에서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으로서 새로운 '힘의 균형'을 얻고자 하지도 않았다. 북한은 핵무기를 쓰고 버릴 협상용 카드가 아닌 동북아 지역에서 긴장과 공포를 조성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평양은 미국의 핵우산과 전시작전권이 한.미 동맹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는 보도를 보고 환호했을 것이다. 핵실험에 투자해서 가장 빨리 거둔 수확이다.

유인책만으로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기는 매우 힘들다. 남아프리카공화국.브라질.우크라이나 같은 나라는 세계 경제의 일원이 되기 위해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했다. 그러나 북한은 정반대다. 김정일은 세계 경제에 편입하는 것을 자살 행위로 여기고 있다.

워싱턴이 6자회담에 거는 기대감을 줄인 것은 잘한 일이다. 6자회담의 다른 4개국(한국.중국.일본.러시아) 사이에서도 평양의 속셈에 대한 평가에 공통점이 모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이번 회담에서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돌파구'라는 말에 극도로 지쳐 있다. 단지 회담에서 말을 주고받았다는 대가로 새 유인책을 제시하거나 대북 유엔 제재를 해제하려는 유혹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북한은 구체적이고 증명할 수 있는 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핵 사찰관이 다시 영변에 들어가도록 허락하고, 플루토늄 생산을 중단해야 한다. 또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의 진행 상황을 공개해야 한다.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거나 단순히 회담에 계속 참가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만으로 보상을 주거나 제재를 해제해서는 안 된다.

북한에 상당한 압력이 가해지지 않으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베이징은 결국 이를 알아차리고 평양에 경제제재를 가하게 됐다. 워싱턴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정부는 아직 평양에 압력을 가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울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신호를 보내고 있다.

대북 유엔 제재는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6자회담이 성과없이 끝나면 유엔 제재 위원회는 더욱 광범위한 제재 리스트를 작성하게 될 것이다.

서울은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현금이 북한 정권에 직접 흘러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도 대북 제재를 확대해야 한다.

정리=한경환 기자

마이클 그린 전 미국 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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