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S 관리의 법적 모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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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감염자의 결혼문제를 놓고 관계자들이 고심하고 있다는 뉴스는 보건당국의 무책과 자가당착의 노출일 뿐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AIDS에 감염된 남녀가 각각 다른 건강한 상대와 결혼하기로 돼있는데 이들 상대에게 감염사실을 알리는 것이 AIDS 예방법의 비밀누설금지 조항에 저촉되기 때문에 어쩔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환자라고 해서 그 질병이 어떤 종류이든 간에 인간적인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인도주의적 원칙에 공개적으로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이 법에서도 국가기관이나 국민은 감염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며,「이 법이 정한 이외」의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법은 환자의 보호와 관리조항에서 AIDS의 전염에 의한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가 감염자를 보호시설에 격리시켜 보호와 치료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감염자의 인권존중이란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격리보호와 치료」의 정신에 상충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를 보완하는 조치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법을 떠나서 사회통념이나 상식으로 판단하더라도 질병의 전염이 확실시되는 감염자의 무책임한 전염행위를 방치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며 반사회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 법의 기밀누설 금지조항에 「정당한 사유 없이」란 단서가 붙어 있는 것은 전염의 우려가 확실한 감염자의 결혼이나 타인과의 성적 접촉이라는 정당한 사유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한다는 점을 확실히 명시한 것 아닌가.
AIDS 감염자의 전염행위는 어떤 경우든 허용돼서는 안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AIDS 감염자에 대한 국가관리의 소홀과 효과적인 대비책이 없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AIDS 감염자가 처음 발생한 85년 이후 해마다 1백%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이 질병은 작년 8월 1백명을 넘어섰고,확인 안된 숫자까지 합치면 확인된 수의 5∼10배가 될 것이라는 것이 당국의 추계다.
그럼에도 확인된 감염자의 거주지역 보건소장이 감염자의 신원을 감추고 3개월에 한번쯤 병증의 발전여부를 점검하는 것이 현재 정부가 하고 있는 관리실태다. AIDS 의무검진 대상자의 40% 정도가 검진을 받을 뿐 나머지는 일반성병 검진만 받고 있고 특이반응을 나타낸 사람들의 이동이나 행동을 통제할 능력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그래서 최근 AIDS 감염자가 결혼을 해서 아기까지 출산하는 사례까지 나타나도 당국은 속수무책인 것이다.
당국은 감염자에 관한 기밀누설 법조항에만 지나치게 민감한 고심을 하기 전에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감염자에 대한 검진과 역학조사,진료기관·보호시설의 설치·운영 등 국가가 해야 할 일에 더욱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급선무다. 같은 법에 규정된 근본적인 대책에는 무관심하면서 전염이 우려되는 감염자의 행위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법조항을 놓고 확대해석으로 전전긍긍하는 처사는 이만 저만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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