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한 폭로경쟁/이춘성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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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보그룹과 관련한 정치인들의 선동성 폭로전이 난무하고 있다.
폭로전에 관한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야의 구별이 없는 실정이다. 과거에도 대상은 달랐지만 이같은 행태는 있어 왔다.
특히 국회가 개회중이어서 국민들의 시선이 여의도 의사당에 쏠려 있거나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같은 일이 비일비재했던게 사실이다.
국회의원 개인의 인기유지나 정당의 선거전략적 차원에서 행해진 일들임은 물론이다.
정치인이 대중인기를 유지하고 정당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뛰는 것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방법과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한 책임은 당해의원 개인이나 소속정당이 져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동안 이같은 책임있는 정치인이나 정당을 별로 경험하지 못했다.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을 경우조차 이에 대한 사과나 해명 한마디가 뒤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6일 한보그룹사인 한보철강의 아산만 매립과 관련한 민주당의 「권력개입 특혜의혹」주장은 이같은 점에서 다시 한번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 태어난 민주당의 폭로성 주장이 때마침 26일로 잡혀있는 기초의회선거일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 건설부와 한보측은 즉각 「사실과 다르다」는 공식적인 반박해명을 내놓았다. 더욱이 한보측은 민주당내 영향력 있는 율사출신 소속의원에게 내용을 설명해 『알았다』는 답변까지 받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정작 진원지인 민주당에서는 이에 대한 해명이 아직까지도 없는 실정이다. 오비이락격인지 몰라도 혹시 선거를 앞두고 과거에 행해진 구태가 재연되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하게되는 것이다.
권력과 결탁해 수서지구사건을 일으켜 온나라를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한보주택을 비호할 뜻은 추호도 없다. 온갖 부정·비리를 동원한 한보주택의 불법·탈법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같은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적법하고도 정당한 절차를 거쳐 사업을 하고 있는 한보철강의 기업활동까지 싸잡아 매도되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이는 정치가 추구하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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