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자주 바뀐다|소보원 원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한국소비자보호원장이 너무 자주 바뀌어 일관성 있고 책임 있는 소비자보호 업무를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지난 87년7월 정부 출연 기관 (경제기획원 산하)으로 개원한 소보원은 지난 3년7개월 동안 3명의 전직 장관을 포함, 4명의 원장을 맞아 『소보원장 자리는 단지 퇴직 관료들의 휴게소인가』라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3년 임기에 연임이 가능한 원장자리에는 상공부장관이었던 금진호씨가 초대 원장으로와 5개월 후 개인적인 이유로 물러났고 4개월간의 공석 끝에 최동규 전 동자부장관이 2대 원장으로 비교적 긴 2년2개월 (잔여 임기)을 재직하다 떠났다.
3대 원장에는 상공부 경공업 차관보 및 한국 공업 표준 협회장을 하던 김형배씨가 90년6월 임명됐으나 8개월만인 지난 22일 박필수 전 상공부장관에게 원장 자리를 물려줘야 했다. 보호원장은 주무부서인 경제기획원의 임명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있다.
김형배씨의 경우 올해 들어 직원의 4분의 1이상이 움직이는 대대적인 직제 및 인사 개편을 단행하는 등 나름대로의 사업을 구상했으나 개편 한달만에 원장이 바뀜으로써 직원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있다. 이같은 원장의 잦은 이동에 대해 상당수의 실무진들은 『매번 스타일과 주장이 다른 사람이 와 그에 맞는 업무를 추진하다보면 하던 프로젝트가 바뀌기도 하고 연이은 업무보고에다 회의도 많아져 난감할 때가 많다』고 짜증스러워 했다.
또 『잦은 내부 인사 개편으로 업무 담당자들의 전문성을 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점 외에도 전직 장관급들이 잠시 쉬었다 가는 「징검다리식」 인사 관행은 ▲더 나은 자리를 바라보는 원장들의 정부 관련 부처 눈치보기 ▲일에 대한 의욕 부진 ▲수행업무에 대한 결과와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점 ▲기업과 생산자 육성에 익숙했던 관변 인물들이 단기간 내 소비자 보호 「마인드」를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어려움 등도 지적되고 있다.
소보원은 개원 초기부터 중견 간부급 이상의 절반이 넘는 자리를 공무원·정부 투자 기관 출신으로 채워 「위인설관의 인사가 아닌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 원내 직원 여론 조사 (89년10월 시행 )에서도 『업무 수행과 관련해 정부 부처를 지나치게 의식한다』(79.1%), 『국민적·사회적 이슈에 대해 사업이 형식적이고 미온적이다』 (75%)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반해 일부 직원들은 『원장이 자주 바뀌기는 하나 그나마 전직 장관급들이 원장으로 오면 정책 개선을 위한 소보원의 대 정부 제안들이 더 먹히는 일면도 없지 않다』는 반응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김동환 변호사 (「소비자 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전 회장)는 『소보원의 예산·감독권을 가진 정부가 일을 평하게 하기 위해 관변 인물 일변도로 원장을 기용하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날이 갈수록 소비자보호 업무가 복잡해지고 전문성이 요구되므로 평소 소비자 문제에 소신과 책임 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시간을 갖고 일하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안태호 소비자 문제 연구 원장 (인하대 교수·경영학)은 『소보원장직은 소비자 보호 사업의 발단과 진행, 결과를 지켜보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한다』며 『적어도 원장직 이하 직급에라도 민간 소비자 단체 출신이나 전문가 등으로 충원, 시각의 다양화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보원 노조의 박용석 위원장은 『현재와 같은 인사 관행에 대해 정부 출연 기관 공동 투쟁 위원회와 함께 공청회 등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혜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