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군대와 연극의 공통점이 뭐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삼등병
대학로 연우소극장. 17일까지. 1만20001만5000원. 02-3673-5580

"군대는 연극과 똑같아. 대사가 다 정해져 있거든, 계급에 맞게끔. 또 한번 무대 위에 오르면 막이 끝날 때까진 내려갈 수 없지. 다만 공연이 너무 길다는 게 문제야."

연극 '삼등병'은 제목처럼 대한민국 남성들이 가장 많이 떠들고, 대한민국 여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군대 얘기다. 다행히(?) 축구 얘기는 안 나온다. 삼등병이란 계급은 없다. 일종의 상징성이다. 세 명의 출연진은 진짜 군 내무반 혹은 야간 초소를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리얼하게 군대 풍경을 묘사한다. 욕지거리가 난무하고, 고참병이 신참병을 괴롭히는 장면도 적나라하다. 민간인이 보기엔 너무 유치하지만 군대 안에선 치열한 문제들, 이를테면 팔의 각도는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계급에 따라 관등성명은 어떻게 달리 말해야 하는지 등 세세한 일상도 보인다. 여성 관객은 배꼽을 잡으며 웃지만 남성 관객들은 사뭇 심각하다. 왜?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현역으로 군대를 제대한 이라면 다음과 같은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내일 제대인데 갑자기 전쟁이 터진 거야.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군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거야. 정말 끔찍한 악몽이었어."

줄거리는 대학시절 연극반을 했던 주인공 윤진원의 2년2개월 군생활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다. 신병 때의 고단함, 일병 시절의 인간적 교감, 병장 때의 쓸쓸함 등이 그려진다. 제대 두 달을 앞두고 주인공이 갑작스레 탈영병 사건에 휘말리면서 차분하던 극은 긴박함으로 쑥 빨려들어간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주인공의 선택은? 억압이 또 다른 억압을 탄생시키며, 인간 본성은 과연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아직 신예인 성기웅 연출가는 극적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주제의식을 결코 놓치지 않는, 녹록지 않은 내공을 보여준다.

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