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첫 기업인 출신 회장 박용학씨(일요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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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풍」에 강한 무협될 것”/특계자금 개선… 수출 위해 똘똘 뭉칠때/조직의 힘으로 자율운영 되게 「대개혁」
수서지구 특혜분양사건에 바로 앞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국회의원 뇌물외유사건­.
이 사건은 일련의 무더기 정치인 구속사태의 테이프를 끊은 사건이어서 그만큼 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외유자금중에는 무역진흥 특계자금도 관련,이 자금을 관리하는 무역협회도 몸살을 앓아야 했다.
무협은 결국 임기를 바로 앞둔 남덕우 전 회장의 하차에 이어 후임회장에 추대된 금진호 고문도 수락번복의 소동끝에 회장취임을 스스로 사양하고 말았다.
박용학 신임 무협회장(76)은 어찌보면 이같은 와중에 「마감시간」에 쫓겨 회장직을 떠맡은 셈이나 무협 45년 사상최초의 기업출신 회장이란 점에서 그 역할이 기대되고도 있다.
박회장은 이같은 주변의 인식을 의식한 듯 『결재나 하는 회장노릇을 하러 이 자리에 앉은 것은 아니다』며 초대 업계출신 회장으로서의 강한 의욕을 내보였다.
실제 이를 반증하듯 박회장은 무협회장을 맡은 뒤 대농 명예회장과 내외경제 회장자리를 사임,장남 박영일 회장에게 모두 넘겨버렸다.
­기업인 출신이 처음으로 무협 회장을 맡게된데 대해 업계가 환영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민간인 출신이 과연 바람센 자리를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은게 사실아닙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관에 있던 분은 정치권의 바깥바람을 두려워할지 모르겠으나 오히려 외풍에는 민간출신이 강합니다. 언제라도 그만둘 각오를 하고 있다면 관이든,정이든,우리가 약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앞으로도 계속 민간출신들이 무협회장을 맡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놓겠습니다.
관료출신들이 하던 때보다 더 잘하면 되는거니까요. 그렇지 못하면 저를 뽑아준 무역업계에 대한 배신입니다. 무역협회에 뼈를 묻는다는 각오입니다. 그 때문에 대농도,신문사도(내외경제·코리아헤럴드) 모두 다 아들에게 맡겨버린겁니다.』
­무협 부회장(비상근)만 24년을 해오시면서 관료출신 회장들의 결점을 숱하게 보아오셨나 보지요.
『꼭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관은 극히 사무적이어서 자기가 해야만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의 관리능력이란 한계가 있게 마련이며 무역협회는 회장 혼자 꾸려나가기에는 너무 큽니다. 기업인은 조직을 중시합니다. 조직에 의해 저절로도 굴러갈 수 있게 만들어야 기업이 움직입니다. 남 전회장도 저더러 자기가 못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더군요.』
­그렇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협회를 운영하실 생각이신가 보지요.
『대개혁을 하겠습니다. 회장의 권한을 대폭 부회장에게 위임하고 부회장의 권한 역시 부서장들에게 넘기겠습니다.
권한을 주는대신 책임도 철저히 물어갈 생각입니다.』
­업계출신 회장으로서,지금까지 대농그룹을 경영해온 기업인의 입장에서 정부에 대해 갖고 계신 불만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엊그저께 이봉서 상공부장관을 만나서도 그 얘기를 했습니다. 이제 서로 완전히 문을 열어 놓고 지내자고 말입니다. 서로의 카폰 번호까지 일러주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로의 전화는 그때 그때 받아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경제가 어려울때일수록 민·관이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잘잘못은 말하고 싶지 않고 이제부터라도 수출진흥을 위해 서로 똘똘 뭉쳐야 합니다.』
­무협이 특계자금의 운영개선안을 마련한다고 약속해놓고 너무 시간을 끌고 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오히려 개선방안의 하나로 제시되던 무협자산의 매각도 지난 총회에서 절차를 더 까다롭게 한 것 아닙니까.
『국회의원 뇌물외유사건으로 특계자금을 놓고 무슨 흑막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특계자금이 무역에 기여한 공적은 엄청납니다.
남용한 사실도 없고 착복한 사실은 더더욱 없습니다. 특계자금은 정부예산보다 더 무서운 돈입니다. 학계·언론계·법조계 등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특별위원회가 개선방안을 마련하겠지만 앞으로 수출을 위하지 않는 사업에는 일체 쓰지 않겠습니다. 일단 93년까지는 그대로 걷고 없애느냐,존속시키느냐는 그때가서 결정하겠습니다.』
­수서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정치권과 민간업계의 밀착관계가 이제는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고 있습니다.
『업계입장에선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수서사건은 같은 기업인의 한사람으로서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앞으로는 좀 어렵겠지만 정치인 스스로가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정치를 해주었으면 합니다. 그에 앞서 국민들 스스로도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합니다. 예컨대 지역구의원을 찾아가 이런 저런 부탁을 하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국회의원이 부탁을 들어주자면 돈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또한 국민들도 이제는 받아야 찍어주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국민 모두가 노력하면 깨끗한 정치는 가능한 일입니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다보니 수출이야기가 뒤로 밀렸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연초부터 걸프전쟁등으로 수출환경이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저의 우선 목표는 금년도 수출목표액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4년간의 무역흑자시대를 뒤로 하고 다시 무역적자시대로 돌아선 현 시점에서 수출진작은 무역업계에 주어진 절대절명의 과제지요. 그렇다고 조급해 한다고 해서 일이 되리라고는 안봅니다. 특히 북방부분은 조심스러워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대일 무역역조의 개선이라든지 기술이전에 따른 신상품의 개발 등 보다 본질적인 문제해결에 앞장설 생각입니다.』
­끝으로 금고문의 회장영입에 가장 적극적이셨는데 대통령의 친·인척 배제공약을 무시하면서까지 금고문을 회장에 앉히려 한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까.
『분명한 것은 정치적 환경 때문에 금고문을 추대하려 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상공부장관도 지냈고 무협고문도 하고 있고 해서 적절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담배를 피워보지 않았고 술은 5·16후 군인들과 교제하다보니 마시게 됐다는 박회장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오후에는 수영을 하며 주말은 골프와 스키로 소일한다.
박회장은 다음 일정 때문에 짧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나이는 70대지만 몸은 30대고 마음은 20대』라고 환하게 웃는다.<이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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