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한강상류 팔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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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on EOS-1Ds MarkⅡ 70-200mm EXTENDER EF 2x f5.6 1/1500 ISO 100

해마다 이맘때면 깃이 유난히 하얘서 백조라고 부르는 고니가 팔당에서 노닙니다. 수만 리를 날아와 예서 보금자리를 꾸리고 겨울을 납니다. 올해엔 팔당대교에서 댐까지 족히 100마리가 넘는 놈들이 찾아왔습니다. 겨울의 팔당은 '백조의 호수'가 됩니다.

먼발치에서 고니를 보면 마치 하얀빛이 일렁이는 물결을 타는 듯합니다. 긴 목과 날개를 움직이지 않고도 미끄러지듯 너울을 거슬러 오릅니다. 단아한 자태로 떠다니는 모습이 우아하다 못해 도도하기까지 합니다. 간혹 긴 목을 곧추세우고 날개를 펄럭이면 품었던 햇살이 퍼져 나오듯 화사합니다. 백조로 변신한 오데트 공주가 화사한 빛을 뿜으며 춤을 추는 듯합니다. 이렇게 도도하게 뽐을 내던 녀석들이 갑자기 물속에 머리를 쑥 집어넣고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세운 채 두 발을 버둥거립니다. 먹이를 찾는 몸짓인데 여간 우스꽝스러운 게 아닙니다. 또 쉴 때는 똬리 틀 듯 목을 뒤로 감아 날개에 묻고 둥둥 떠다닙니다. 마치 럭비공 모양의 바가지가 떠돌아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유심히 살펴보면 무리를 이뤘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족 단위로 움직이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암수 두 놈이 꼭 붙어 다니거나 새끼와 함께 다니는 거지요. 먼발치라 암수 구별은 어렵지만 새끼는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어미와 크기는 비슷한데 깃이 회갈색입니다. 이놈들이 바로 동화 속 '미운 오리새끼'인 거지요. 그 옆엔 자그마한 오리들이 동동거리며 따라다닙니다. 동화 속 호수가 바로 여기인 듯합니다.

새를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가들의 공통점은 인내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을 잡으려고 하루 종일 흙바닥에 엎드려 있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끼니도 예사로 거르고 몇 날 며칠 지새우는 일도 허다합니다. 모든 것이 마찬가지겠지만 사진에도 열정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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