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2세시대|공장근무 12년…생산현장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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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김중원 한일그룹회장(44)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나타내지 않는다. 김 회장은 87년 그룹회장으로 취임한 이듬해까지 배구협회회장을 지내면서 스포츠활동지원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언론과의 직접적인 접촉도 삼가왔다. 그는 그룹 내부를 다지는데만 신경을 썼다.
김 회장은 82년 선친인 고 김한수 회장으로부터 한일의 대권을 이어받은후 회장 취임을 권유하는 주변의 소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장직을 고수했다. 자신의 나이로 볼 때 회장이 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계열기업 13개로>
87년 회장에 취임했지만 그의 공개적인 모습이 뜸해진 것 역시 비슷한 이유 때문이다.
그는 재계원로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면서 활동에 신중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의 보수성향은 선친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이런 일이 있었다.
김 회장이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70년부터 한일합섬 마산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진해에 내려온 박정희 대통령이 공장에 들렸다.
김한수 회장의 안내를 받아 공장을 시찰하던 박 대통령이 김 회장에게 『김 회장은 섬유만 할 겁니까. 다른 것도 해보시죠』라며 당시 재계의 유행이었던 중화학분야에 대한 투자를 권유했다.
이에 김한수 회장은 『한 우물만 파겠습니다』고 대답했고 현장에서 두사람의 대화를 지켜본 당시 김중원 사원은 사장이 되고 회장이 되면서까지 그 원칙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김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 받은 이후 비록 6개의 계열사가 13개로 늘어나고 업종도 다양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한일그룹은 여전히 섬유가 주력이었다.

<생명공학등 관심>
그러던 김 회장의 경영구도가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87년 무렵이다.
이미 2년전인 85년 「국제」라는 덩치 큰 기업을 인수하면서 명실공히 그룹의 모양도 갖추게됨에 따라 변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이 87년 당시의 극심한 노사분규는 섬유· 신발등 노동집약적 업종을 이끌고 있는 韓 일로 하여금 기술집약적 분야의 진출을 재촉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 반도체와 생명공학이었고, 1차적으로 국내기술자원이 그런대로 축적되어있는 반도체분야에 발을 내디뎠다.
특히 이 분야에서도 이미 국내기업들이 생산하고 있고 2∼3년후면 기술발전의 한계점에 도달할 실리콘 반도체보다는 91년이후 수요가 폭발함 것으로 예상되는 갈륨 비소반도체를 기업변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지난해 5월에는 5백억원을 투자, 경기도 시흥에 국제상사 갈륨비소 반도체공장을 건립했다.
김 회장은 지금 일본에 가있다. 걸프전쟁이후의 국제경제변화를 본인이 직접 느껴보겠다는 생각에서 지난 l2일 출국했다.

<국제감각 가져라>
김 회장은 지난 연말에도 보름 가까이 미국을 다녀왔다. 미국체류기간중 한일합섬과 국제상사로부터 아크릴과 신발을 수입해 가는 바이어들을 거의 만났다.
그는 귀국직후 가진 임원회의에시 『미국 동부쪽의 경기가 안 좋더니 최근에는 서부쪽도 나빠지고 있다』면서 『수출관련 임원들은 눈· 코·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킨채 안테나를 꽂고 지내라』며 「국제감각」을 강조했다.
김 회장은 금년 들어서 향후 10년간을 「제3창업시대」로 선언했다.
대권 승계후 다져온 10여년간의 「수성」에서 벗어나려는 공식적인 시사였다. 그는 반도체 외에 석유화학·생명공학등에도 관심을 갖고 전문가들의 분석을 기다리고 있다. 김 회장은 앞으로 10년간 이 분야에 3조원의 돈을 쏟아 붓겠다는 장기계획을 손질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이같은 사업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덕에 그룹 종합연구소를 만들기도 하고 금년내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외에 첨단 섬유소재의 연구개발도 병행할 계획이다.
한일그룹의 미래를 연구하게될 대덕연구소가 첨단 섬유소재에 대한 개발도 맡는다는 것은 김 회장의 섬유에 대한 애착을 반증한다.
그가 그룹 전체의 매출액가운데 섬유비중을 낮추러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섬유산업의 장래를 비관적으로 보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잘살게 될수록 좋은 옷을 입고 싶어하기 때문에 섬유산업의 앞날은 밝을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김 회장은 지금도 해외 출장때는 유명백화점에 새로나온 섬유제품의 천조직등을 수첩에 그려와 실무자에게 건네준다.
요즘 그는 능력있는 경영브레인을 보다 많이 확보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 85년국제상사 인수작업이 시작됐을때 그 분야에 실무를 익힌 경영인이 측근에 없어 애를 먹었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서는 회사 임원들의 경영수업을 독려한다. 연구기관도 좋고 대학도 좋으니 경영에 관련되는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또 과장등 중간관리자급들에 대해시도 가능하면 각종 경영관련 세미나에 참가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에게는 남다른 이점이 있다. 70년 입사해 82년 사장이 될 때까지 그는 줄곧 공장에서만 근무했다. 이같은 공장근무경험은 회사의 모든 시책을 생산현장 우선주의로 연결시켰다.

<퇴직자 후한대접>
한일합섬의 네군데 공장(마산· 김해· 대구· 수원)에 설립된 한일실업고등학교에 연간 20억원씩을 투입하는 것도 그같은 회사방침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는 툭하면 비서도 대동치 않은채 공장을 순시하기도하고 공장의 사무직요원과 생산직근로자들에게 똑같은 유니폼을 입힌다.
서울 광화문의 번듯한 사옥도 서울사무소일뿐 본사는 공장에 있다. 그러나 공장만을 우대하다보니 약간의 부작용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일그룹이 섬유라는 외길을 걷는 것과 어우러져 한때 중간관리층의 이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회장은 퇴직임원들이나 정년퇴직을 하는 중간관리자들에게 후한 대접을 해준 것으로 널리 알러져 있다. 공헌도에 따라서는 32개월분의 월급을 위로금으로 주기도 했다.
특히 한일합섬의 대리점 운영권을 주기도 해 꽤나 많은 돈을 벌게된 퇴직자도 여러명 있다.
김석원 쌍용회장· 김승연 한국화약회장과 함께 재계의 기린아 3K로 불리는 김중원 회장은 다른 두김과는 색다른 스타임의 경영을 하고 있다.<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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