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조준희 사법개혁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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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와 대법원의 합의에 따라 지난달 28일 사법개혁위원회가 출범, 사법개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90년대 이후 벌써 세번째다.

김영삼 정부때인 1995년에는 세계화추진위원회,김대중 정부때인 1999년에는 사법개혁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이렇다할 가시적인 성과는 내지 못했다.그래서 “이번에야 말로 결정판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이번에도 뿌리깊은 법조이기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물거품이 될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하경 논설위원이 조준희 위원장을 만나 사법개혁 작업에 임하는 각오를 들었다.

-존경받는 재야 법조인으로서 중책을 맡으셨는데, 국민은 과거 사법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끝나서인지 사개위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번에는 사법부가 진정으로 거듭나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까요.

"최선을 다해야지요. 사법개혁 논의는 90년대 초부터 시작됐고 김영삼.김대중 두 정권에 걸친 화두였습니다.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국민이 보기에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남은 과제를 풀어내기 위해선 위원들의 노력뿐 아니라 개선안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대법원이나 정부 측에서도 뒷받침을 해줘야 합니다."

-현재의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점수로 매긴다면 몇 점이나 될까요.

"딱 몇 점이라고 말씀드리기는 힘듭니다만 부족한 점이 있다는 인식은 있지요. 법원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찾기 위해서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두 위원회는 결국 사법시험 합격자 정원을 1천명으로 늘린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법개혁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는 무엇일까요.

"사실 이번에도 몇 가지 문제는 있습니다. 사법개혁이 성공하려면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위원회 설치 근거를 법률로 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입니다. 법률로 사개위를 독립기구로 하고, 실천력을 가질 수 있도록 위원회 의결에 입법 권한을 부여해 주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과거 위원회들이 목표 달성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도 그런 권한들이 없어 단순 자문기구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번 사개위도 대법원 규칙이 조직의 근거이고, 대법원 산하기구입니다. 이 점은 아쉽습니다. 그러나 대법원과 청와대가 이번에는 위원회가 개선안을 내면 받아들이자고 사전 조율을 한 것으로 압니다. 저도 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양측에 '위원회 의결 결과가 꼭 실천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거기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국민이 박수 칠 만한 훌륭한 개혁안을 만드는 것이 기본 전제지요."

-강도 높은 사법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사개위 위원 대다수가 민간인입니다. 그런데 위원회 구성을 보면 위원장을 제외한 위원 20명 중 11명이 법조인이어서 직역 이기주의를 넘어선 근본적 개혁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데요.

"일본과 비교해 법조계 인사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법조인 위원 중 일부는 시민단체와 노동계 대표로 위촉된 분들입니다. 또 법조인들도 개혁에 대해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 정도라면 민주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구성입니다."

-과거 사개위는 청와대 주도였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분석이 있는데, 이번 위원회는 대법원 산하 기구여서 법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국민적 기대와 먼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국민이 그런 염려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사개위가 법원의 영향력 때문에 일을 옳게 못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일하기 나름입니다. 여론을 수렴해 국민이 공감할 만한 방안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대법원장이 상정한 안건이 ▶대법원의 구성과 기능▶법조 일원화▶법조인 양성▶국민의 사법 참여▶사법 서비스 및 형사사법제도 등 다섯 가지입니다. 각각의 안건이 모두 중요한데, 위원회 활동 기간인 내년 말까지 끝낼 수 있을까요.

"위원회에서 새로운 안을 낼 수 있기 때문에 논의 주제는 더 늘 수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너무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과거 위원회의 패인(敗因) 중 하나가 '내 손으로 끝내야 한다'는 조급함이었습니다. 대법원 규칙에도 활동 기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근원적.장기적 의제는 기간에 얽매이지 않고 연구하겠습니다."

-대법원 규칙에 따르면 위원회 회의 경과와 내용은 원칙적으로 공개되지만 회의 자체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이런 폐쇄적 운영은 시대 흐름과 안 맞는 게 아닙니까.

"회의 공개는 위원들이 자기 의견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진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 풍토가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회의 공개가 위원들의 소신있는 발언과 의결권 행사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결과는 공개하되, 회의 자체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안을 입법화해야 할 국회 법사위가 너무 보수적이어서 사법개혁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의 공감을 얻는 최선의 개혁안을 만든다면 보수나 진보, 또는 여야에 관계없이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제 5대 안건을 중심으로 질문하겠습니다. 대법원이 정책법원으로 갈 것이냐, 실무형 법원을 고수할 것이냐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 정책법원으로 가려면 상고허가제를 통해 대법원의 업무부담을 줄여야 하는데, 위원장으로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개별 안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조심스럽네요. 다만 대법원의 기능은 최종 재판을 하는 곳 이상이 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회에서 가치 충돌이 일어날 때 법원이 최대 공약수의 가치를 발견하고, 법의 흠결이 있을 때 이를 최종 해석하는 기관이 돼야 합니다. 일종의 법 창조 기능을 하는 것이지요. 또 현재 상고율이 높지만 이를 상고허가제 등을 도입해 줄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보다는 국민의 사실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게 함으로써 상고율을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일정경력 이상의 변호사를 판사로 임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조 일원화는 이번엔 실현됩니까.

"법조 일원화는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명법관은 사실 인정과 양형을 잘해야 합니다. 그것은 법률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회경험과 인간적 성숙이 필요합니다. 젊은 나이에 판사를 했던 제 자신의 경험으로도 그렇습니다. 판사들은 변호사들이 너무 썩지 않았느냐며 법조 일원화에 반대하는데 모든 변호사가 부패한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분들도 많습니다."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로스쿨 도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법학 외에 다양한 학문을 접하고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무 경험이 있는 교수진 확보 등 현실적 문제가 많기 때문에 심도있게 논의돼야 할 것입니다."

-대법원에서 지난 2월 민간인이 재판에 구속력 없는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는 준참심제 실시 여부를 올 하반기에 결정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십니까.

"재판에 일반인이 참여하는 참심제나 배심제는 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연고주의 때문에 역기능이 생길 우려도 있는 만큼 현실적 부작용이 없는 범위 내에서 신중히 검토하겠습니다."

-법과 인권의 파수꾼이어야 할 법조인들이 전관예우.변호사 탈세 등으로 지탄받기도 합니다. 이런 관행이 고쳐지지 않으면 어떤 사법 개혁도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할 텐데요.

"열린 마음을 갖고 직역 이기주의에 함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하다 보면 기존 관행에 젖어있는 법조계의 저항에 부닥칠 가능성도 큽니다. 하지만 노력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제도뿐 아니라 법조인의 의식 개혁도 따라줘야 할 것입니다."

정리=김현경,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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