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스스로 워크아웃 신청한 팬택계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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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택계열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대기업 그룹 계열사를 제외하곤 1991년대 4000만원으로 창업해 조 단위의 매출액을 올린 첫 제조업체여서 '팬택 신화'라는 이름을 남겼던 그룹이기에 지켜보는 이들이 더욱 많다. 팬택계열 채권을 보유한 12개 은행이 자금 압박을 받고 있는 팬택계열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워크아웃이 통과되면 채권 상환이 유예되고 채권단의 공동관리를 받게 돼 팬택계열은 회생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 이번 워크아웃은 부실 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해 제정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지난해 말 만료돼 워크아웃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채권단의 100%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팬택, 왜 어려워졌나=세계 휴대전화 업계가 노키아.삼성.모토로라 등 글로벌 대기업 위주로 급속도로 재편되면서 상대적으로 자금력과 브랜드의 힘이 떨어지는 팬택과 같은 중견기업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게다가 올 들어 계속된 환율 하락은 팬택의 수출 경쟁력을 더욱 약하게 했다. 내수 침체도 한몫했다.

팬택은 지난해 7월 스카이란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SK텔레텍을 인수했지만 판매 부진으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스카이는 기존 내수 브랜드인 큐리텔 시장을 갉아먹었다.

'비 올 때 우산을 뺏는' 금융권의 여신 회수 관행도 팬택의 뒷다리를 잡았다. 지난 7월 중소 휴대전화 업체인 VK의 부도 이후 일부 시중은행은 팬택계열을 위험 기업으로 간주하고 만기가 된 대출 연장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약 2000억원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크아웃 잘 될까=팬택계열은 은행권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워크아웃이 성사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팬택 측은 "12개 채권은행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워크아웃에 대한 구두 합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리먼브러더스 등 외부 컨설팅 기관의 채권단 설득도 도움이 됐다. 산업은행 등 은행권 채권단도 일단 서면동의서 확보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채권단이 확보한 담보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도 워크아웃 성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현재 채권단이 잡고 있는 담보는 1000억원대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가 문을 닫는 것보다 어떻게 해서든 살리는 게 채권단 입장에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팬택앤큐리텔이 발행한 3500억원대의 회사채에는 기말 감사보고서 기준으로 부채비율이 600%를 넘으면 곧바로 회사채를 상환해야 하는 단서조항이 달려 있다.

이 회사는 이미 올 3분기 말 현재 자본잠식 상태여서 은행권이 손을 놓고 있으면 감사보고서가 공개되는 내년 3월이면 대규모의 회사채를 한꺼번에 상환해야 한다. 결국 이런 파국을 피하려면 은행권도 워크아웃 이외의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채권은행들이 워크아웃에 합의할 경우 실사를 거쳐 한 달 뒤 경영 정상화 방안이 결정된다. 그러나 개인.기업.제2금융권 등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보유자가 계속해 만기 상환을 요청할 경우 은행들이 이를 어느 선까지 감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투자 유치 등이 회생의 변수=팬택계열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채권단의 결정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권단이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만 해결해 주면 회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팬택계열은 이미 양적 성장 대신 수익성 향상에 초점을 맞춰 주요 시장과 주력 모델로 사업을 재편하고, 선택적으로 경영 자원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올 초부터 미국.일본.중남미.유럽 등 4개 시장을 해외 주력시장으로 선정하고 나머지 지역 사업은 과감히 접거나 축소해 비용을 줄이고 있다.

워크아웃이 결정되더라도 외부에서 어떻게 자금을 수혈하느냐가 회생의 관건이다. 세계 최대 휴대전화 유통사 중 하나인 미국의 유티스타컴이 내년 1분기까지 5000만 달러를 자본금 형태로 팬택앤큐리텔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티스타컴이 워크아웃 중인 회사에 투자할지가 관심사다. 팬택의 지분 22.7%를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인 SK텔레콤의 자금 지원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팬택 박병엽 부회장은 11일 임직원들에 보낸 편지에서 "창업 16년 만에 가장 큰 고비를 맞았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다"고 썼다.

이상렬·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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