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수사고민/「수서」 범죄입증에 어려움(초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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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초동단계서 소극적 대응/의혹만 무성할뿐 구체적 혐의 못잡아/한보 정회장 비자금 로비도 추적 곤란
수서택지 특혜분양의혹에 대해 감사→고발→사법처리 수순에 따른 수사착수가 초읽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수사주체가 될 검찰은 초동단계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한데다 그동안 구체적 협의에 접근할만한 자료등이 수집된게 없어 고심하고 있는 실정.
각종 의혹만 무성할 뿐 범죄혐의에 대해서는 뚜렷한 가닥조차 잡을 수 없는 상태여서 수사대상 선정 및 수사방법조차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감사원의 「사전정지」과정을 거치지만 이번 의혹의 가장 핵심이라 할 정치권이나 관계공무원들의 뇌물수수 부분은 감사를 통해 밝혀지기 어려워 결국 검찰의 독자수사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검찰은 뒤늦게 기초자료수집등 내사에 들어갔으나 현재 감사가 진행중이라 서울시등에 관련자료 요청등을 할 수 없어 지금으로서는 보도내용을 중심으로한 법률검토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수사는 검찰의 뒤늦은 수사착수로 수사기술상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수사절차는 혐의에 대해 은밀한 내사를 거쳐 범죄가 입증되면 피의자를 소환,신병처리하는 순서이나 이번 수사는 내사를 거치지않아 초동단계에서 관련자부터 소환해 혐의를 입증해 나가는 귀납적 수사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혐의가 없는데도 형사처벌을 전제로한 본격수사에 곧바로 들어감으로써 원점에서 모든 것을 가려야하고 증명해야하는 부담을 안게된 것이다.
특히 빠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에 밀려 감사원이 서둘러 포괄적인 비리사실을 검찰에 넘겨줄 가능성이 많아 수사대상 여부를 가리는 작업까지 벌일 경우 수사템포가 늦어질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대검의 한 관계자는 『먹이인지 아닌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덥석 덤벼들면 탈이 날 수도 있고 머리가 깨질 수도 있다』며 준비없이 임하는 이번 수사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일본 리크루트사건의 경우 방대한 동경지점 특수부에서 몇달간 내사를 거쳐 수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성급한 수사결과 기대는 무리라는 입장을 보였다.
법률적인 측면에서도 수사의 어려움이 한두가지가 아니리라는 전망이다.
이 사건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뇌물수수 의혹부분의 경우 뇌물은 극도의 비밀성을 지니고 있는데다 이 사건이 문제된지 벌써 상당기간이 지났기때문에 사건해결의 단서가 될 많은 증거들이 이미 인멸됐을 가능성도 있어 범죄입증이 쉽지않을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와 함께 한보의 정태수 회장이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비자금을 따로 마련해두고 당사자들을 개인적으로 만나 로비를 직접 해왔기때문에 금품수수를 입증하기가 곤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울시의 수서택지분양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장병조 문화체육비서관등의 직권남용여부를 가리는 것도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는 점에서 중요하나 쉽게 입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지난달 19일 서울시에서 열린 대책회의에서 장비서관이 『사회적 물의가 없도록 잘 처리하라』는 의견을 밝힌 것은 직권남용의 전제가되는 「압력」으로 해석될 여지도 없지않으나 비서관으로서의 업무조정행위로 볼 수 있는데다 청와대가 개입돼있다는 점에서 과연 철저히 파헤칠 수 있을지도 주목거리다.
이밖에도 택지매입과정에서의 토지거래허가여부도 중대한 수사대상이나 대기업의 부동산 매매는 대개 전문가들이 도맡아 처리하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불법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는게 수사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같은 수사절차 및 내용보다 검찰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이 사건이 기본적으로 고도의 정치적인 사건으로 수사결과 의혹을 풀지 못하거나 미지근하게 종결됐을 경우 쏟아질 비난과 질책이다.
다만 서울시가 주택조합 택지분양을 백지화하거나 한보가 이 지역에 시공업체 참여 포기선언을 한다면 이번 파동의 원인이 상당부분 해소됨으로써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크게 문제될게 없어 사태진전에 따라서는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을 극적인 가능성도 없지 않다.<김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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