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장애인 채용 리딩뱅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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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달 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4층 대강당. 눈이 불편하거나, 팔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등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국민은행이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장애인 공개채용 시험의 최종면접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국민은행이 지난 2일 6급 이상의 장애인 100명을 공개채용했다. 이번 공채에는 전국에서 1600여 명이 지원했다. 이 중 250명이 서류전형을 통과했으며 면접과 인성.적성검사를 거쳐 최종 합격자가 가려졌다.

이로써 국민은행 전체 직원(2만5000명) 중 장애인의 비중은 1.1%(190명)로 커졌다. 시중은행 최초로 장애인 고용비율이 1%를 넘은 것이다. 은행은 이를 하나의 '실험'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주로 콜센터와 업무지원센터 등에서 일하게 된다. 7명은 본사 인사부 등 일반 부서에도 배치된다.

성과가 괜찮을 경우 내년 상반기에 100명을 더 뽑을 계획이다. 이렇게 매년 두 차례 장애인 공개채용을 통해 향후 3년 내 장애인 고용 의무비율 2%를 채운다는 목표다. 또 전용 화장실 등 장애인 시설도 대폭 확충키로 했다.

과태료 내느니 고용 늘리기로=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국민은행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아 낸 부담금이 연간 2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논쟁거리가 됐다"며 "이 정도 돈이면 차라리 업무수행이 가능한 사람을 뽑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다"고 말했다.

면접에 참가한 이영리 의무실장은 "장애인 중 상당수가 정상인보다 업무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면접자들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적극적인 자세로 면접관을 감동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인 고용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식전환이 이뤄져야 하며, 다음으로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설이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 지켜지는 '2% 고용'룰=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르면 종업원 50인 이상 기업체는 근로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도록 돼 있다. 특히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체가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모자라는 수만큼 매년 1인당 50만원의 장애인고용부담금을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은행은 장애인 고용을 꺼리고 있다. 고객 서비스가 강조되는 은행 업무의 특성상 장애인은 곤란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10월 말 현재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개 시중은행의 장애인 고용률은 평균 0.52%다. 또 기업.산업.수출입 등 3개 국책은행은 평균 0.47%로 더 낮다. 의무고용비율은 말할 것도 없고 종업원 50인 이상 기업의 평균 장애인 고용률(1.49%)의 절반도 안 된다.

장애인 고용 확산되나=최근 들어 은행권에서는 장애인 고용에 대한 시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올 6월 하나은행과 부산은행이 장애인고용촉진공단과 장애인고용촉진협약을 체결했다. 이어 9월엔 우리은행, 지난달 21일에는 기업은행과 씨티은행도 협약을 맺었다. 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이계천 홍보팀장은 "그동안 은행권은 물론 대부분의 직장에서 장애인은 업무효율이 떨어지고 일반직원과 화합이 되지 않는다며 기피해 왔다"며 "1등 은행이 장애인 고용을 확대할 경우 타 직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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