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위 지자제 지침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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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방송위원회(위원장 강원룡)가 최근 지자제선거를 앞두고 각 방송사에 전달한 「지자제관련 방송지침」을 놓고 방송인들이『방송을 통제하려는 의사 아니냐』며 반발하는 등 파문이 일고있다.
방송위가 방송사들과 한국유선방송협회에 보낸 이 지침은 모두 9개항으로 지방자치체선거에 있어서 방송이 공정성을 지키도록 촉구하는 내용으로 돼있다.
개괄적으로는 각 정당과 후보자에 공정한 기회부여, 사실을 근거로 한 정확성 추구, 비방이나 허위선전 배제 등을 들었다.
세부사항으로 후보자나 정당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화면·음향 및 청중숫자 등을 신중하고 정확히 다루고 선거관리위원회나 관계당국이 요청할 경우 외에는 방송이 선거운동수단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외견상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같은 방송지침에 MBC노조가 성명을 낸 데 이어 KBS노조와 방송종사자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서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방송위가 이러한 지침을 내보낸 것은 일종의 언론사전검열이며 5공시절의 보도지침을 연상케하는 명백한 월권행위로 보고 방송지침의 철회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방송위가 주장하는 공정성의 실체가 정부·여당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형식적 공정성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양측의 이같은 대립양상도 따지고 보면 요즘 방송가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얼마전 MBC-TV 드라마 『땀』과 보도기획프로그램 『MBC리포트, 정치 물갈이』에 대한 방송위의 「사과명령」과 「주의」조치가 선거정국을 앞둔 시점에서 정부의 방송통제의도와 맞아떨어진 결정이라며 적지 않은 방송인들이 방송위의 활동에 강한 의혹을 품어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방송위의 이번 지침은 후기상으로 오해의 소지를 가질 수 있고 선거를 앞둔 요즘 「자칫 말많은 시어머니」로 비칠 수도 있는 반면 방송인들의 반발도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식의 과잉반응일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방송위측은 『매년 3∼4월께 방송사에 보낸 방송편성·운용기본정책의 하나일뿐』이라며 『이번 겅우는 지자제를 앞두고 특별히 방송의 공정성을 당부한 내용이다』고 밝히고 있다. <김기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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