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역도인 '삶의 바벨'은 너무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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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란의 영웅’ 레자자데가 역도 남자부 무제한급 인상에서 195㎏을 가볍게 들어올리며 포효하고 있다. [도하 AP=연합뉴스]

돈으로 애국심까지 살 수는 없었다. 7일(한국시간) 남자 역도 105kg급과 무제한급(105kg 이상) 경기가 벌어진 알다나 뱅퀴트홀. 그곳에서 '돈을 주고 사온 선수'와 '민족을 대표하는 영웅'의 상반된 모습이 연출됐다.

▶이란의 영웅 레자자데

105kg급 경기가 끝나갈 즈음 경기장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무제한급에 출전하는 레자자데 후세인을 보러 몰려든 이란인들 때문이다. 2000년과 2004년 올림픽을 제패한 레자자데는 인상.용상.합계 모두 세계 기록 보유자다. 그는 이란 선수단의 기수였다. 관중석에 있던 아하마드 아마드는 "그는 우리가 다른 민족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이란은 다른 아랍 국가와 다른 민족(아리아계)이고, 언어도 중동어가 아니라 페르시아어를 쓴다.

다섯 아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은 골람 아메드는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이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얼굴에 이란 국기를 그려 넣은 막내 메흐디는 "위대해(great!), 최고로 강해(strongest)"라는 단어를 반복해 외쳤다. 쉽게 아시아게임 2연패를 달성한 레자자데는 230kg을 든 상태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단의 환호에 답례했다. 바벨을 내려놓은 다음에는 유니폼에 페르시아어로 쓰인 '이란'이라는 글자에 키스했다.

▶카타르 귀화선수 아사드

105kg급에 출전한 사이드 사이프 아사드는 불가리아에서 귀화한 선수다. 개최국 카타르는 금메달을 위해 100만 달러를 주고 그를 데려왔다. 인상 1차 시기에서 170kg을 드는 데 실패한 아사드는 경기를 완전히 포기한 것 같았다. 3차 시기에선 바벨을 들어올리는 제스처만 취하고 그대로 물러났다. 용상은 해보지도 못하고 실격 처리됐다. 카타르 국립은행에서 근무하는 압드 아 라흐만 사이드 알말키는 잔뜩 노기에 찬 얼굴로 "애국심(loyalty)이 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데려온 것은 메달을 따 달라는 것과 카타르 어린이들이 그를 보고 꿈을 키우라는 의미에서였다"며 "돈을 줬으면 경기라도 잘해야 하지 않나"고 했다.

7일 현재 카타르 귀화 선수 중 메달리스트는 중국 출신 여자 체스 선수 주첸(동메달)뿐이다. 이번 대회 포스터에까지 등장한 3000m 장애물 세계 챔피언 샤힌은 부상을 이유로 출전을 포기했다.

도하=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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