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베트남화”우려(걸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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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병력수·포로심리전 등 비슷하게 전개
『걸프전쟁은 베트남전쟁과 비슷하게 발전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이 말은 미 ABC­TV의 인기,뉴스프로인 「나이트 라인」 21일밤 프로를 시작하면서 진행자 테드 코펠이 내뱉은 첫마디다.
걸프 개전 5일만에 나온 코펠의 이같은 선언은 조금 성급한 감이 없진 않으나 베트남전이 끝나기 훨씬전 『미국은 베트남에서 패배했다』고 선언했던 미 CBS­TV의 전설적 앵커맨 월터 크론카이트를 기억하게 하며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무엇이 코펠로 하여금 개전 불과 며칠만에 이같은 결론을 내리게 했을까.
걸프전쟁이 베트남전과 비슷해지고 있는 이유로 코펠은 우선 현지에 파견된 미군 병력수가 베트남전이 한창때의 그것에 육박하고 있음을 들었다.
미 국방부는 21일 걸프 현지파견 미군 병력수가 46만명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는데,이는 주베트남 미군 병력의 최고수준인 53만6천명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펠은 두번째 이유로 포로가 된 미군 병사들이 심리전무기로 등장하고 있음을 들었다.
이라크는 생포된 다국적군 포로들을 국내 TV에 등장시킨뒤 이를 미 CNN­TV를 통해 전세계에 방영되도록 했다.
처음엔 목소리로만 나오던 이들 포로들의 신문내용은 CNN이 21일부터 화면과 함께 방영하면서 미국 전방송들에 의해 24시간 방영돼 미국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코펠은 이를 24년전 월맹이 하노이에서 미군 포로들을 시가 행진시켜 이를 TV를 통해 전세계에 방영하도록 함으로써 미국에 정치적 충격을 주었던 사실을 상기시킨 것이다.
당시 주사이공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코펠은 베트남전 당시 화면과 7명의 연합군 포로들의 모습을 번갈아 방영하며 포로들의 장면이 미국에 「잠재적인」 정치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다른 TV들이 포로가 되기전의 밝은 모습과 포로가 된 후의 모습을 대비시키면서 방영한 다국적군 포로들의 모습은 미국인들에게 「절망감」을 주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부시 미 대통령의 미 정부당국은 이라크가 제네바협정을 어기고 포로들을 고문하고 선전도구로 이용한 것에 「분노」를 표시하며 이를 국제법에 호소할 것을 밝혔다.
그러나 일반 미국 국민들에게 이들 포로들의 처참한 모습은 국제법차원을 떠나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것이며 쉬울 것으로 생각되었던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당할 수 있는 희생을 눈으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나이트라인」 프로그램에 등장한 한 군사전문가는 이같은 사태가 『너무 빨리 왔다』고 말했다.
코펠은 또 이들이 포로가 됐을 경우 병사로 당연히 지키도록 돼있는 미군의 「포로시의 행동지침」을 어기고 『미국과 정치지도자들이 평화스런 이라크인들을 공격한 것이 잘못』이라며 「평화적 해결」을 주장,반국가적 발언을 한데 주목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베트남전 당시 포로경험자들은 『고문이나 강요에 의해 한3은 무시되어야 한다는 관대한 입장을 보였으나,코펠을 비롯한 일부 출연자들은 포로들이 반국가적 발언을 한데 대해 실망을 표시했다.
일부 인사들은 이에 대해 『이번 전쟁에 대한 미국의 참전동기가 불충분한데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코펠이 걸프전쟁이 베트남전과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한 또다른 이유는 『신속한 승리예상이 부정확했기 때문』이다.
개전초 의심없는 공군력의 우세로 단기승부가 예상되며 부시 대통령의 표현대로 「행복감」(부시는 이 말을 경계적 의미로 사용했다)에 젖어있던 미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기승리가 어렵다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걸프 미군 사령부나 미 국방부가 발표한 초기 공습전과의 부정확 가능성을 지적하기 시작하고 있다.
영국의 ITN­TV는 미군이 완파했다고 주장했던 이라크의 통신시설과 지휘통제시설,그리고 방송시설이 지하로 들어가 있을 가능성을 예상지도와 함께 21일 보도했다.
걸프전쟁의 베트남전화를 선언한 코펠의 예견이 적중할지는 앞으로 시간을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현재 상황으로 볼 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만은 없을 것 같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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