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뺌버릇」 못버린 노동부/정순균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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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직업병 발생은 한나라의 산업과 복지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가능한 발생이 적은 것이 좋고 아예 없는 것이 이상이다.
그러나 산업화에 따라 직업병은 피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불행히 새로운 직업병이 발생했다면 정확한 실태파악과 원인규명,환자치료와 보상,그리고 관련업체에 대한 작업환경 점검·개선 등으로 또다른 환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완벽한 후속조치를 취하는 것이 순리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국내 최초의 카드뮴중독 유소견자로 판명된 울산 현대정밀산업 근로자 2명에 대한 노동부의 처리과정을 지켜보느라면 병든 근로자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노동부가 근로자 윤종일씨(38)의 카드뮴중독 사실을 처음 알게된 것이 지난해 2월이고 한상구씨(40)는 지난해 6월이었다.
윤씨의 경우 요중 카드뮴 중독치가 정상치보다 무려 14.4배를 넘었고 한씨는 3·4배를 웃돌았다.
그런데도 노동부가 정작 이들에 대한 정밀역학조사에 나선 것은 지난해 11월20일 언론에서 「국내 최초의 카드뮴중독 발생」이라고 크게 보도한 뒤였다.
윤씨는 이미 지난해 6월까지 네차례 임상검사에서 모두 혈중·요중 카드뮴 중독치가 정상치의 1.5배에서 9.4배로 나타나 카드뮴중독 사실이 누가봐도 분명했는데도 노동부는 이를 감추기에만 급급하다가 뒤늦게 언론에 들통난 것이다.
이번 정밀조사에서도 두 근로자의 요중카드뮴 중독치가 정상치의 세배로 나타나자 노동부는 「직업병은 감추는 것이 상책」이라며 쉬쉬하고 있다가 14일 「은폐의혹」 보도가 나가자 뒤늦게 결과를 발표하는 구태를 반복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다섯차례의 검사결과 카드뮴중독 사실이 확인됐는데도 『아직 공식확인되지 않았다』며 직업병 인정을 유보하고 나선 점이다.
노동부는 지난해초 카드뮴중독 유소견 판정당시 당연히 즉석에서 이루어져야 했던 카드뮴 취급업체에 대한 작업환경 일제점검을 앞으로 2개월 후인 오는 3월에나 하겠다고 발표했다.
근로자야 병들든 말든 행정편의대로 후속조치에 늑장을 부리는 노동부의 자세는 아무리 보아도 구시대적 발상이다.
정부가 늘 내세우는대로 국민소득 1만달러 「선진」 진입이 내일 모레인데도 노동복지와 행정만은 여전히 3백달러 수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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