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헌금(정치와 돈:4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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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선거치를 “실탄”거래 불가피/평민,지자제공천과 관련 「거액 프로젝트」설/민자,지구당 요원 많아 내놓고 받기 어려워/주간연재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의회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자들간의 공천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천을 따내기 위한 이른바 「공천헌금」의 액수에 정가의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자·평민 양당은 『이번 지자제선거를 공명선거로 치를 것』이라면서 표면적으로는 『공천헌금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결연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금」이라는 실탄이 필요하고 정당에 따라서는 14대 총선과 대통령선거에 대비한 선거자금을 확보해야 할 뿐 아니라 1차적인 공천권을 행사하는 지구당위원장들 역시 차기국회의원 선거를 겨냥한 비축자금을 이번 공천권 행사과정에서 챙기려 들 것이기 때문에 내막적으로는 은밀한 뒷거래가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여야관계자들은 솔직히 실토하고 있다.
내무부측이 경제단체들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4조원 규모의 자금이 선거를 전후해 풀려 나갈 것이라고 예측한 점이나 평민당 주변에서 이번 선거를 통해 거액을 모은다는 이른바 천억대 프로젝트설이 나도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공천헌금의 액수는 여야간·지역간·경쟁비율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
다시말해 3당통합이후 자금줄에 압박을 받고 있는 평민당입장과 자금동원 능력에 있어 여유가 있는 민자당의 입장이 다를 수 밖에 없고,「공천=당선」인 우세지역과 그렇지 못한 열세지역에서의 헌금액수 또한 현격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으며 졸부를 포함한 재력보유인사들이 많이 나서는 대도시와 자금난에 허덕이는 농촌지역에서의 액수도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우선 공천헌금을 둘러싼 탐색전이 가장 치열한 곳은 평민당쪽.
평민당은 이번 지자제선거를 통해 ▲영남 및 재야인사를 당선시킴으로써 당의 참신성을 부각시키고 ▲「공천당비」등으로 지자제선거를 비롯한 14대 총선·대통령선거에 대비해 자금을 확보해야할 형편이다. 이에 따라 3∼4개 선거구를 갖고 있는 1개지역구당 1∼2명은 당인사,나머지 1∼2명은 외부인사를 영입한다는 내부기준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와 관련,당료C씨는 『공천헌금은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하는 호남지역과 서울일부가 대부분일 것』이라면서 『헌금액수 또한 공천대상자의 능력과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울은 8천만∼1억원수준,호남지역은 5천만∼1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또다른 관계자는 『광주지역과 서울의 성동·성북·도봉·강서·양천 등 강세지역은 돈많은 공천희망 외부인사들이 많아 상당한 액수의 헌금이 있을 것』이라며 『최고액수는 13대 국회의원 후보헌금의 절반수준인 수억대에 육박할 것』이라고 밝혀 헌금규모의 일단을 짐작케하고 있다.
이에 반해 평민당의 지지가 거의 미미한 지역은 사정이 달라 헌금을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소액의 성의표시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경기도에서 출마를 희망하는 한 당직자는 『14대 선거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공천을 희망하고 있으나 2천만원 이상이면 공천을 포기할 생각』이라고 말해 지역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외부인사 영입이 모두 「정치자금확보용」인 것만은 아니다.
서울 관악구의 경우 이해찬 의원은 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33세의 유시민씨와 민변출신 변호사를 추천했는데 이들은 김대중 총재가 직접 공천을 약속하면서 「선거지원금」을 준 케이스.
평민당측 사정과는 달리 민자당은 여권의 속성상 이렇다할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
우선 공천경쟁자의 대다수가 현역 지구당위원장의 후원회 멤버이거나 지구당 당직자들이어서 별도의 공천금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광역의회 선거결과가 민자대 평민의 의석배분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해당선거구에서 공천자가 낙선될 경우 지구당위원장에게 책임이 돌아가게돼 무턱대고 공천을 줄 수도 없다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따라서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을 공천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그중에서도 재력이 가장 튼튼한 후보를 고르겠다는 것이 공통된 바람이다.
그러나 재력이 있으면 인물이 변변치 않고 인물이 빼어나면 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결국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돈도 많고 인물도 좋은 이른바 「정자좋고 물도좋은」후보들은 민자당공천을 받지 못하면 무소속으로 뛰겠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어 이들로부터 공천헌금을 받아내기란 쉽지않다는 것이 이들 의원들의 이야기다.
이와 관련,이번 지방의회 선거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 한 지구당 당직자는 『공천헌금 명목은 아니라 하더라도 공천을 조건으로 한 갖가지 기부행위는 있을 것』이라며 『공천희망자의 직업·재정능력·경쟁률·당선가능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2천만∼5천만원 수준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중앙당 차원에서 공천당비를 관리하고 있는 야당과는 달리 여당은 지구당 위원장 차원의 소액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여당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예측하는 전망일뿐 현실적으로 공천을 통한 정치자금확보가 생각보다는 간단하지 않으며 특히 액수면에서 실제와 추측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김대중 총재가 지난 4일 신년사에서 『선거에 대비한 후보자 확보와 선거자금 고갈로 밤잠을 설칠 정도』라고 고충을 토로한 부분은 이러한 맥락에서 음미해볼만한 대목이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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