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병 희생자 유족의 절규(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10일 오전 서울 종로2가 파고다공원 주변은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다.
방한중인 가이후 일본 총리가 일본정치인으로선 처음으로 독립운동의 성지인 파고다공원을 방문하기 때문이었다.
공원 건너편 인도에서는 대한독립유공자유족회등 각 사회단체 회원 2백여명의 일본 총리 공원방문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일본 총리양반 좀 만나게 해주세요.』
갑자기 경찰의 발걸음이 바빠지는가 싶더니 중년 여인의 외마디 울음섞인 절규가 터져나왔다.
서울 서부이촌동에서 아침밥을 설치며 뛰쳐나왔다는 권병창씨(52·주부)였다.
권씨는 양손에 색깔이 누렇게 변한 조그만 사진 한장과 네 귀가 헐어 닳은 엽서 한장씩을 들고 있었다.
1940년 아버지 권영철씨(당시 21세)가 강제징병됐다 해방 3일전 마지막으로 잘 있다고 보내온 함흥발 엽서와 사진이라고 했다.
해방과 함께 고향인 충남 대천으로 무사히 귀환할 것으로 알았던 아버지는 여지껏 소식이 없다는 것이다.
『45년 동안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매년 일본 후생성에 편지를 보내 생사확인을 의뢰했지만 「모른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TV뉴스를 통해 일본 총리가 여기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 생사라도 확인해주도록 부탁하고 싶어서 왔는데….』
잠시 뒤 사이드카 호위속에 공원앞에 도착한 가이후 총리는 6분여동안 참배한 후 자신의 공원방문 반대를 외치는 쪽으로 눈길 한번 주지않고 경호차에 휩싸여 사라져갔다.
경찰에 떼밀려 공원밖 골목으로 쫓겨난 권씨는 『이 ×아 내 아버지 찾아내라』고 소리치며 골목바닥에 쓰러져 눈물을 쏟았다.<최형규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