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여원 빚더미 회사 … 3년만에 흑자 1조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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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신한지주가 LG카드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확정된 8월 15일. 박해춘(사진) LG카드 사장은 윤증현 금감위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LG카드를 정상화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는 위로 메시지였다.

박 사장은 지난 2년여간 구조조정과 회사 매각이라는 전쟁터를 헤쳐왔다. 사방천지가 적이었다. 성과를 요구하며 '볶아대는' 채권단, 돈 떼먹을 궁리만 하는 카드 채무자들, 매각에 반대하는 목소리…. 1일 서울 남대문 사옥 11층 사장실에서 만난 박 사장은 "지난 2년8개월은 절망에서 정상으로 일어선 세월이었다"고 술회했다.

박 사장이 LG카드의 사령탑에 오른 것은 2004년 3월 15일. 산업은행 유지창 총재 등의 권유를 계속 물리쳤지만 "LG카드에 가서 회사를 살려라. 한 번만 더 고생해라"는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박 사장은 "기업 회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몸소 경험했기에 계속 고사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20조원 부실난 회사(서울보증보험)도 살렸는데 6조원(LG카드)쯤이야 문제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 파산위기에 놓인 서울보증보험 사장으로 취임해 부도 직전의 회사를 흑자회사(2003년 2435억원)로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역시 쓰러진 기업을 일으켜 세우는 작업은 힘든 일이었다. 사장 취임 직전 채권단이 9539억원을 1차로 지원했지만 LG카드는 연체율 32%, 연체금액 5조9000억원에 시달리고 있었다. 취임하자마자 박 사장이 해야 할 일은 매일 다른 금융회사를 돌아다니며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금을 막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박 사장은 "구원투수로 등장한 나에게 힘을 실어주어도 부족할 채권단이 당장 성과를 보여달라며 들들 볶아댔다"며 "지난 3년의 임기 동안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바로 그때"라고 회상했다.

'곧 망할 LG카드의 돈은 떼먹어도 된다'는 당시 시장의 인식도 바꿔놔야 했다. 박 사장은 "외주로 운영하던 추심업무를 직접 가져와 말 그대로 악착같이 돈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LG카드의 올해 흑자는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체율도 10월 말 현재 5.43%로 낮아졌다. 산업은행 등 LG카드 채권단은 신한금융지주에 LG카드를 넘기면 약 3조원의 매각 차익을 챙길 상황이다.

박 사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경제전문지 포브스코리아로부터 '올해의 최고경영자(CEO)'로 뽑혔다. 또 지난 6월엔 국내 카드사 최초로 비자인터내셔널의 국제이사로 피선됐다. 세계 2만1000개 비자인터내셔널 회원사 CEO 중 22명만으로 구성되는 이사회다.

박 사장은 여전히 오전 7시 '칼 출근'을 하고 있다. 부실과의 전쟁을 끝내고 LG카드 매각 성공이라는 '개선문'에 들어섰고 임기만료(내년 3월)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도 박 사장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고 말한다. 임기 후 거취 문제에 대해서는 "그런 건 아직 생각할 여유도 없다"며 "마무리 현장 지휘탑으로 회사 매각을 제대로 하기 위해 정신이 없을 뿐"이라고 답했다.

글=최준호<joonho@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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