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참사에 대한 소련책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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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을 방문중인 로가초프 소련 외무차관은 83년 9월 소련이 격추한 KAL007기의 잔해와 유해처리문제를 우리 정부가 거론한데 대해 『언론보도에 기초해 양국간 문제를 거론해서는 안된다고 본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첫째,언론들이 제기한 문제는 「언론보도에 기초한」문제로 축소될 성격을 훨씬 넘어선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KAL기 격추사건을 전후한 과정에 대해서는 많은 의혹이 개재되어 있고 그 진상을 완벽하게 파헤치는데는 당장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련공군 수호 이 전투기의 요격으로 우리 민간여객기가 격추되었고 그 결과로 대부분이 우리 국민인 2백69명의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KAL기가 소련 영해상에 격추된 것도 확인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해가 소련 영해에 떨어졌을 것이고 사건 진상 해명에 필요한 블랙 박스를 포함한 비행기 잔해가 소련 영해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대단히 큰 것이다.
그렇다면 유해와 블랙박스를 회수하기 위한 소련측 작업이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이들을 회수했다면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언론보도에 기초한 문제」로 지나쳐 버릴 수 없는 이 사건의 본질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한소간의 외교관계 수립이 이제 실질적 협력관계로 나아가고 있는 시점의 중요성을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과정을 겪어 이루어진 이 관계가 건실한 앞날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에 대한 소련측의 성실한 진상해명과 후속조치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언론에 보도된대로 회수한 유해를 화장함으로써 참상을 은폐하려 한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밝혀야 된다.
그것은 이 참사의 책임을 진 소련 당국이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예의에 속하는 것이다.
아울러 이즈베스티야지가 지적한대로 격추 당시 소련 전투기와 지상 관제탑 사이에 오고 간 교신 내용도 공개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련 당국이 지금까지 주장해 온대로 KAL기를 미 정찰기로 오인해 격추했다는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 객관적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자료 공개는 이 사건의 전체적 진상을 둘러싸고 그동안 여러 전문가들이 제시한,미국측의 항로이탈 방관설 등 갖가지 가설들에 대한 의문도 풀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할 것이다.
또 단 한 구의 유해라도 발견되었다면 유가족들에게 되돌려줘야 하고 만약 유해들을 화장했다면 그 재라도 돌려주는 것이 최소한의 예일 것이다.
우리는 한소관계의 바람직한 전개를 위해서는 과거 냉전시대에 있었던 양국간의 앙금들을 씻도록 소련측이 최대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실수로 인한 사건이니 유감스럽다고만 할게 아니라 소련 당국이 그런 진의가 있음을 행동으로 보이라는 것이다.
그런 성의의 첫 표현으로서 소련 당국은 유가족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게 유해와 유품들을 되돌려주는 노력을 보이라고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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