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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성·저택 팝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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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프랑스 정부는 최근 들어 16억 달러(약 1조5000억원) 상당의 정부 소유 성(城)과 저택 등 역사적 건물들을 매각했다. 헝가리 정부도 부다페스트 도심 다뉴브 강변 노른자위 땅에 자리 잡은 정부청사를 팔 계획이다. 막대한 유지관리비 부담을 덜고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프랑스 정부가 이미 매각한 유서깊은 건물 중에는 18~19세기 귀족들이 살았던 10개의 호화저택(호텔)이 포함돼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뉴욕의 웨스트브룩파트너스는 지난해 파리 중심가의 아르데코 양식의 사무용 빌딩을 매입했다. 칼라일 그룹도 1억6500만 달러에 파리 '뤼 뒤 바크'에 있는 벨에포크(아름다운 시대) 양식의 건물을 사들였다.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리를 점령해 군사정부 청사로 사용했던 '호텔 마제스틱'도 곧 매물로 나올 예정이다.

전후 프랑스 외무부가 넘겨받아 청사로 사용하기도 한 이 건물은 베트남전을 끝내는 파리평화협정 조인식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프랑스 총리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텔 마티뇽'을 지은 18세기 건축가 장 쿠르통의 걸작 '호텔 드 누아르무티에'도 머지않아 같은 운명을 맞게 된다.

프랑스 정부 소유 건물은 주로 외국인, 특히 미국계 연금기금이나 사모펀드에 많이 팔린다.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의 부호들에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노트르담 성당 같이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문화유적을 제외하고도 프랑스 정부는 약 500억 달러에 상당하는 역사적 건물들을 소유하고 있다.

로마.중세.르네상스.바로크.네오클래식.아르데코.벨에포크 등 건축 양식도 다양하다. 정부가 현재 청사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의 가치만 해도 200억 달러나 된다. 이러한 건물들을 유지보수하는 데만 매년 26억~40억 달러가 필요하다. 그러나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아직 손도 못 대는 곳이 수두룩하다.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문화재급 건물의 훼손을 막기 위해 약 9000만 달러의 긴급 예산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건물 매각 대금은 대부분 원래 소유하고 있던 정부 부처 몫으로 돌아간다. 이 중 15% 정도는 국가부채를 갚는 데 사용된다. 무엇보다 막대한 유지보수 관리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납세자들의 부담이 크게 준다.

그러나 역사적 건물을 처분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일부에서는 중장기 관리 대책을 세우지 않고 매각이라는 손쉬운 방법에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홍보를 제대로 하지 않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매각대금 사용 용도도 불투명하다는 비판도 있다.

헝가리 정부가 1000억 포린트(약 4800억원) 상당의 정부청사를 매각키로 한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새 청사 부지로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은 매각대금의 절반인 500억 포린트에 불과하다.

헝가리의 올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0.1% 수준으로 심각한 상황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해 온 사회당 연립 정부는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 내년까지 공무원 1만4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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