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회복을 위한 캠페인/사람답게 사는 사회: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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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왜 벌받나” 뉘우칠줄 모른다/지도층 인사들 탈법과 맞물려/잘못 저지르고 “세상 탓” 발뺌/「유전무죄」등 오해소지 없애야/죄의식 마비
구랍15일 서울 성북경찰서에 붙잡힌 K대 의예과 1년 박모군(20)은 세칭 명문대 인기학과의 대학생이다.
박군은 기말고사 성적을 1점 높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대학에 다니는 친구 이모군(20·K공대 환경공학 2)을 시켜 담당강사를 폭행했다.
박군의 청부폭력 논리는 이렇다.
『기말고사 교양화학 점수가 2백점 만점에 64점이었습니다. 1점만 높이면 낙제를 면할 것 같아 강사를 찾아가 부탁했는데 폭언하며 창피를 주었습니다. 단 1점때문에 꼭 F학점을 맞아야 합니까.』
박군은 『만약 대학입시에서 1점이 모자라 떨어졌다면 지금처럼 학교측에 항의했겠느냐』는 담당형사의 질문에 『그것은 경우가 다르다』고 했다.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은 강사(27)는 『세상이 무섭다는 사실을 처음 피부로 느꼈다』며 『우리 교육이 위기에 처한 것 같다』고 했다. 박군의 예에서 보듯 잘못을 저지르고도 별달리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죄의식은 커녕 이런 저런 이유를 끌어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든다. 나이·교육수준·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가 「부끄러워하는 마음」「뉘우치는 능력」을 잃어버린 듯 하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경기도 양평 유증렬씨(55) 일가족 생매장 살해사건의 범인 오태환(31)·윤용필(31)은 자신들의 범행에 끝내 죄책감을 보여주지 않았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신혼부부를 납치했다가 살려주었더니 경찰에 신고해 쫓기는 신세가 됐거든요.』
인천에서 5년제 공업전문학교까지 나온 오. 그리고 결혼해 세살난 딸까지 둔 윤.
그들은 『다섯살난 최서연양을 생매장할때 울면서 살려달라고 했지만 못들은 체 하고 흙을 덮었습니다. 빨리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고 태연히 말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양평경찰서의 한 간부는 『아무리 흉악한 살인범이라도 잡히고 나면 양심의 가책을 나타내는게 일반적인데 요즘은 어떻게든 빠져만 나가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같은 죄의식 상실은 결국 범죄발생 증가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대검찰청이 발행한 『90년 검찰연감』에 따르면 1970년 34만7천건이던 범죄가 지난해에는 4배에 가까운 1백34만1천건으로 늘어났다.
이는 매년 평균 5만2천여건씩 늘어난 셈이며 증가율로 따지면 매년 25%에 이른다.
서울대 사회학과 한완상 교수(55)는 『범죄에 대해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풍조는 정치·사회·경제 지도층 인사들의 탈법행위·각종 비리와 맞물려 사회의 도덕적 기강이 흔들린데서 비롯된다』며 『이러한 「유전무죄 무전유죄」식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정치인등 지도층 인사들이 사회정의에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도덕성 회복의 첫 단계는 누구나 타고난 양심의 여러 기능중 부끄러움을 알고 잘못을 뉘우치는 능력을 되찾는데 있다는 지적이다.<최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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