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단결 곧은 질서의 상징|1991년 신미년 양의 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새해가 밝았다.
송구(송구)하고 나서 영신(영신)한 이 새해아침, 눈을들어 달력을 보니 양띠 해 신미(신미)년이 큼직하게 인쇄되어 있구나.『옳아, 올해 신미(신미)는 한자로 바꾸어서 신미(신미)로 해야겠구나. 신자도 들어가고 양자도 들어갔으니까 발음만 같을 것이 아니라 뜻마저 같게 하련다! 이것을 올 정월(정월) 정초(정초)의 정(정)한 마음으로 삼아보자』는 국문학전공자답게 운(운)을 먼저 떼어본다.
신미(신미)롭게 살려면 먼저 정(정)하게 살라는 자신의 교육에서 올해 띠인 미(미)를 생각해본다. 이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본디 우리나라엔 양(양)이 없었다. 양 사촌격인 염소가『음매해』하고 뒤끝을 떨리는 소리로 들판을 장식함으로써 양을 대신하였다. 그래서 양띠는 염소 띠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염소에서 덕담을 찾아보려면 조금 시원하지 않다.
염소가 담배를 먹는다든가 고집이 세다든가, 제가 뭔데 나이 들었다고 수염이 난소냐고 해서 염소란 이름을 차지했느냐 느니 하는데 우습지만 『염소 물똥을 싸는 것 보았느냐』 는 속담대로 진실대로 살라는 뜻도 없지 않으니 염소의 격(격)은 그저 그런 평범함이 된다.
보호를 받지 못한 결과가 되었다. 이러니 염소 띠보다 그냥 양띠라고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양이라면 지금은 우리고장에 많이 있다.
전북 남원군 운봉면 동쪽 산기슭이 운봉 목장이다. 이전에는 소를 길러 종우장(종우장)·종축장(종축장)이라 한 곳이 박정희 대통령이 호주와 뉴질랜드를 갔다온 후에 양을 기르는 목장이 된 것이다. 거기서 깍은 양털로 만든 이불을 나는 덮는다. 그러고 보니 올해 나는 양띠는 아닐망정 여러모로 양답게 살아야겠구나.
이미 신미(신미)와 정(정)을 제시하였거니와 정작 양을 생각하면서 교훈 비슷한 것을 얻어보자면 양의 역사나 일화를 찾아볼 일이다. 그런데 다른 동물과 달리 이 양에 관한 전설은 많지 아니하다. 물론 호랑이·개·말보다 소재는 적으나 좋은 뜻을 담은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절 뒷산에 흰 바위가 멋이 있어서 백암사(백암사)라 이름하였다. 이 백암봉(백암봉)아래에 암자가 있고 암자에는 당연히 스님이 있는데 낮에 독경(독경) 하는데 놀라웠다. 사람 제자들 틈에 낯선 제자도 있었다. 백양(백양)일곱 마리가 와 줄곧 무릎을 끓고 경칭을 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 이 스님의 꿈에『우리는 스님의 독경소리에 변화하여 축생(축생)의 몸을 벗어나서 이제사람으로 환생합니다. 감사합니다』라 하여 이상히 여겨 뒷산에 가보니 백양7마리가 죽어있지 않은가.
『이 절을 백양사(백양사)라 이름하리라. 이 스님을 환양승(환양승)이라 하리라. 아니 이 절의 역대 조사(조사)는 양을 부르는 경지의 도력(도력)을 가져야 할지니 환양(환양)이라 부를지니라.』
이 절이 곧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있는, 백암사에서 고친 이름인 백양사(백양사)이다. 백양(백양) 숫자와 스님의 이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설이 있기는 하나 미천한 양이 도를 듣고 닦아 높은 경·지에 다다랐다고 하는 것은 같은 내용이다.
양이라면 우리는 기독교와 성경과 예수를 생각한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와 선한 목자(목자)를 신자는 물론 비신자도 갈 안다. 종교는 물론 문학에서도 숱하게 보이는 이 양은 올해 우리에게 백양사의 환양(환양)과 성경의 심양(심양)을 음미하며 살라고 깨우친다고 하겠다.
세종대왕께서 계속 갈증을 느끼는 범에 걸렸을 때 양(양)을 잡아 약을 하자는 시의(시의)의 진언을『우리나라에도 없다가 겨우 기르는 양, 그 생명을 갖고 내가 범을 나으면 죄가 아니랴』하시며 거절한바가 있다. 과연 생명을 아끼셨던 성군이셨다. 그러고 보니 올해 좀 자연사랑과 환경애호도 곁들이고 싶구나.
양은 무리를 지어도 예쁘기에 군이라는 글자가 생기고 개는 안 예쁘기에 독이라는 글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혈은 견 자가 아닌가. 단결이 잘 되고 질서가 있고 「함께 더불어 사는 슬기」를 지닌 양을 볼 때 오늘날 나만 알고 단체생활에 등한한 우리네 인간에게 군의 뜻을 말하고 싶다. 한자 풀이를 하자면 아름다울 미, 옳을 의, 기를 양, 부러워할 선도 적용해 볼만하지 아니한가.
단군이래 73회에 이르는 신미 년마다 역사가 있었을 것이다. 올해는 통일과 내정(내정)과 외교(외교),그리고 경제·문화면에서 멋있는 우리나라의 업적을 들고자 위 고사를 제시하면서, 순박하고 순진하고 봉사하며 희생 헌신하는 양의 뜻을 새겨보고자 하며, 다시금 새롭고 아름답고, 올바른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자고 나 자신부터 다짐하는 바다. 이것이 신미 년의 덕담(덕담)이 아니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