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회복 위한 종교지도자 신년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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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윤리없는 힘과 돈 타락 키웠다/찰나주의 팽배 “정직하면 바보”되니 문제/대통령부터 정치도의 지키는 자세 중요/토지공개념·실명제로 공평한 부 이룩해야/때되면 물러날줄 아는 정치지도자 왜 없나
중앙일보는 살인·강도·강간·폭력사건 등의 폭증으로 살맛조차 잃게 하고 있는 사회불안의 근본 원인이 도덕성 파탄에 있다고 보고 「도덕성회복」을 올해의 캠페인 주제로 설정,철저한 현실진단과 처방을 제시하기로 했다. 그 1차적사업으로 우선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60·서울교구장)와 불교 조계종 송월주 스님(55·금산사 회주)의 신년대담을 갖고 총체적인 도덕성 상실의 현실 진단과 시급한 처방을 제시해 봤다.<편집자주>
○퇴폐·과소비 심화 언론보도도 책임
▲김성수 주교=오늘날의 우리 사회윤리와 도덕 타락상은 한마디로 말해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해버린듯한 느낌입니다.
아버지가 딸과 그 친구들을 술집에 파는가 하면 수감중인 폭력배가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검사를 협박하는 세상입니다.
돈 몇푼에 일가족을 생매장하는 흉악무도한 사건까지 있었지요.
이런 직접적인 범죄도 문제지만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려는 사람들이 바보취급 받고 그숫자가 점점 줄어가는 추세가 아닌가 싶어 큰 걱정입니다.
▲송월주 스님=도의와 윤리의 타락은 어느 시대에나 문제가 됐었습니다. 다만 오늘날은 그정도가 지나쳐 누구나 걱정할 정도로 심각해진거지요.
전반적인 교육수준은 더 높아졌지만 도덕을 실천하려는 마음은 더 희박해졌으니까요.
오늘날 도덕이 이렇게 까지 타락하게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의 정당성이 없는 겁니다. 둘째는 정권의 도덕성이 결여된데 있습니다. 정통성 있는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정권을 장악해왔으니까요.
셋째는 정신문화와 도덕보다는 물질과 과학문명의 발전에만 치중하는 오늘날의 사회제도와 교육도 문제입니다.
다음으로는 대중매체가 성장과 결과 위주로 화려한 면만 주로 보도한데도 책임이 있습니다.
여기서 퇴폐와 과소비 현상이 유발되고 서민에게까지 충동적 심리를 일으킨 거지요.
▲김=도덕성 타락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은 살인입니다.
여름에 개미떼가 길을 지나가고 있을때 그걸 밟지않고 비켜갈줄 알아야 하는데 사람목숨을 개미보다 못하게 여기는 죄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는 찰나주의가 판을 치고 있어요. 정치인은 순간적으로 정권을 뺏고 TV화면은 앉아서 리모컨 하나로 휙휙 바뀝니다.
이런 찰나적 변화의 추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게 된 세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송=폭력·인신매매등의 범죄가 만연하는 것도 나하나 잘살고 성공하겠다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타인을 무시하고 생명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김=과소비문화와 빈부격차에 따른 소외감은 성실하게 살려는 태도의 적이 되는 거지요.
강남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도둑을 맞아도 80∼90%가 신고를 안한다고 합니다.
신문에 난것 보면 누구는 몇억원씩 도둑맞고도 신고도 안할 재산이 있고,누구는 뼈가 부서지게 일해도 자동차 하나 못굴리고 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이해가 가는 세태입니다.
중국 당나라때의 고승 백장선사는 『스님도 일하지 않고 시주만 얻어서 사는 것은 잘못』이라며 「일일부작 일일불식」(밭을 갈지않은 날은 밥을 먹을 자격이 없다)이라는 『백장청규』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근로의욕을 저하시키고 있는 부동산투기 등에 의한 불로소득은 무조건 뿌리뽑아야 합니다.
▲송=부의 편재현상은 인간의 탐욕심 때문에도 생기지만 돈을 쉽게 벌수 있는 제도적 맹점을 악용,부당한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토지공개념·금융실명제등을 강화해 이런 맹점들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절대빈곤자 수는 3백만명정도가 된다는데 가진 사람들이 베풀어 이들을 구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에 앞이 안보이는 것이거든요.
도덕운동을 한다 해도 절대빈곤을 그대로 방치하면서 심성을 바꾸라는 것은 대단히 힘든 얘기가 됩니다.
▲김=토지공개념·금융실명제는 실시한다고 하다가 결국 흐지부지 됐는데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느 한 부류만 위한 것인지,나라전체를 위해서 못하게 된건지,실시하면 엄청난 문제가 생긴다고 하던데 그런줄 모르고 시작한 것인지 아기를 낳으려면 산고가 있게 마련아닙니까.
▲송=정권 창출과정과 산업화에 따른 이윤추구 과정이 공정하고 공평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의 갈등과 불만이 팽배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만 유리하면 된다는 기회주의와 한탕주의에 젖게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과 권세를 얻으려는 풍조가 생겼지요.
그런 풍조속에서 정치도 무한투쟁으로 치닫고,상대방의 주장은 정당한 것이라도 무조건 반대하고 모두 부정하는 극단적인 흑백논리가 득세하게 됩니다.
▲김=정치도의의 회복은 심각한 과제입니다. 대통령도 친·인척은 하나도 안쓴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친·인척이 대통령 근처에서 자꾸 활동하고 있으니 약속을 안지킨 거지요.
의원들은 국정감사를 예로 들어봐도 나라를 위한 것은 별로 없고 자기당 아니면 지역구를 위한 민원이 주류를 이루니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내년부터 지방자치를 한다니 지방의회에서부터 갈고 닦아서 국민의 뜻이 어디있는지 배우고 알고나서 중앙정치로 올라오는 관례가 생길까하고 기대해봅니다.
○맘모스 교회·사찰 종교인 각성해야
▲송=우리 정치의 후진성은 심각합니다.
정당의 운영은 여야 모두 민주주의와는 관계가 먼 권위주의 체제지요. 게다가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국민들 앞에 여러번씩 천명한 공약을 지키지 않기가 다반사입니다.
영국의 대처총리처럼 때가 되면 깨끗이 물러가는 모범을 정치지도자들은 한번도 보여준 일이 없습니다.
모두 나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에 차있는 거지요.
지방의회 선거를 통한 정치 훈련에도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벌써부터 금품수수와 물량공세를 통한 과열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뽑힌 사람들이 중앙정치의 부도덕성을 되풀이 하지 않을 수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김=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소에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선진국에서는 평소에는 자신들이 뽑은 사람들에게 정치를 맡겨 놓았다가 투표할때 준엄하게 심판을 하지요.
▲송=정치가 정강과 이념의 대결이 아니라 기득권을 가진 측과 그 도전세력의 대결양상을 띠고 있는데다 지역주의까지 팽배하니 망국적 현상이지요.
정당간의 경쟁이 이념과 정책의 대결이 되도록 우리의 의식뿐 아니라 제도도 바꿔야 합니다.
▲김=사법기관의 타락도 심각합니다.
깡패와 판·검사가 술자리에서 같이 어울렸다는 보도를 봤는데 사실이라면 그런 사람은 공직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남이 뭐라고 하기 전에 그정도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조심해서 잘 해나가야 하는 건데.
▲송=과거에는 정경유착 얘기를 많이 했는데 요즘은 판·검사가 폭력과 유착한다고 하니 충격이었습니다.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사회를 혼란시키는 이같은 유착사례는 법조계에서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종교인들도 반성할 점이 많습니다.
교회와 사찰의 땅이 넓어지고 건물이 높게 올라가고 신도수도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고 있지만 사회는 종교교세의 신장과는 역비례로 폭력과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퇴폐문화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종교인들도 자기 종파의 집단이익에 사로잡혀 사회를 계도하는 목탁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거지요.
교회나 사찰도 성장위주,신도확대 위주의 포교가 아니라 사회를 정신적으로 계도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하겠지요.
▲김=외국사람들이 우리나라 호텔에 투숙해서 창밖을 내려다보면 어디에나 십자가가 보인다는 겁니다. 내 것만 크면,내 교회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은 특히 종교인으로서는 잘못된 것이죠.
한 개체교회 예산이 10억원이라면 그중 1억원은 달동네를 위해서,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거든요.
종교라는게 사회의 마지막 보루인데 이 둑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오는 거지요. 나 자신을 포함한 종교인들이 먼저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송=성공위주,지식축적위주,입시위주의 요즘 교육도 많은 병폐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건전한 도의심을 갖도록 하는 교양과 인격의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김=요즘 일부교사들이 참교육을 부르짖는데 이들의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교육에 대한 인식차가 있더라도 대화를 통해서 이 골을 메우도록 해야합니다.
▲송=주교님이 대화를 말씀하셨는데 대화를 통해 화합을 이루려면 정보를 공개,공유해야 됩니다. 기득권을 가진 층이 무조건 따르라고만 한다거나 못가진 층은 극단적인 「증오」로 대응하는 지금의 세태는 대화도 화합도 없습니다. 정보와 자료를 공개해 공유한 상태에서라야 대화와 토론이 제대로 될 수 있지요.
국민적 토론과정을 통해서 합의를 도출하도록 해야 화합이 되는 겁니다. 통일문제·교육·사회·정치·노사간의 문제 모두가 그렇습니다.
▲김=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에서 근검절약하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이는게 우선입니다.
가진 자,힘 있는 자들이 탐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다음에,가진 자와 못가진 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들이 윤리와 도덕을 존중하고 지키는 「사회도덕회복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
모든 면에서 분수를 지키자는 「분수지키기 운동」도 벌였으면 합니다.
○사회지도층 인사 먼저 정신혁명을
▲송=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국민 개인적으로는 지나친 욕심과 나만은 잘먹고 잘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털어버리는 「마음의 청소」를 해야겠지요.
힘없고 가난한 사람도 상대를 증오하는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정부에서는 물질과 과학만 숭상하는 교육이 아니라 청소년의 도의심을 앙양하고 정신문화를 발전시키는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여기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매스컴에서도 폭력사태라든지 부도덕한 정치인 얘기만 크게 보도할게 아니라 미담기사를 많이 실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동체대비심을 하루빨리 되살려내야 합니다.<정리=조현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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