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9.7억명 인도, 한달 넘게 총선투표…모디 3연임 유력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90호 10면

세계 최대 민주국가의 총선

13일 총선이 진행 중인 인도 비하르 지역에서 투표를 마친 한 주민이 중복투표 방지용 잉크를 묻힌 검지손가락을 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13일 총선이 진행 중인 인도 비하르 지역에서 투표를 마친 한 주민이 중복투표 방지용 잉크를 묻힌 검지손가락을 펴 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유권자 9억 7000만 명으로 세계 최대 민주국가로 불리는 인도의 총선이 지난 4월 19일부터 진행되고 있다. 인도의 인구는 14억 명으로,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약 15배(328만㎢) 크기다. 이런 만큼 전국 투표소만도 105만여 개에 이른다. 출사표를 던진 정당 수도 수천개다. 인도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는 8개의 전국 정당, 57개의 주 단위 정당, 2764개의 소수정당이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규모가 엄청나다 보니 대개 하루 만에 끝나는 다른 나라의 총선과는 달리 투표 기간만 44일로 오는 6월 1일까지 실시된다. 지역별로 6주에 걸쳐 7단계로 나눠, 28개 주와 8개 연방 직할지에서 순차적으로 투표가 실시된다. 6월 4일 개표 결과를 발표하면 임기 5년의 록사바(하원) 의원 당선자 543명이 확정된다.

인도 총선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중복 투표를 막는 방법이다. 투표를 완료한 유권자에게는 검지손가락에 며칠 동안 지워지지 않는 질산은 성분의 보랏빛 잉크를 칠한다. 과거 횡행했던 중복 투표를 막기 위함이다. 이외에도 각 정당들은 당을 상징하는 그림을 앞세워 캠페인을 벌인다. 이는 문맹률이 높았던 과거에 정당을 기억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1947년 인도가 영국 식민지에서 막 벗어났을 당시엔 문맹률이 88%나 됐다. 지금은 문맹률이 14%에 불과하지만 이런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여당인 인도인민당(BJP)의 상징은 연꽃이고,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의 상징은 손바닥이다. 이런 전통은 현재의 전자투표기(EVM)에도 남아있다. 정당 이름 외에도 당을 상징하는 문양이 함께 표시돼 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이번 선거는 국민민주동맹(NDA)과 인도국가개발포괄동맹(INDIA)의 대결로 압축된다. NDA는 힌두민족주의 우파정당인 인도인민당이 중심인 보수·중도 연합체이고, INDIA는 중도좌파 정당인 인도국민회의를 주축으로 하는 빅텐트 야권 연합이다.

집권 BJP는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를 비롯해 힌디어 사용자(인구의 57.1%), 인도아리안계 언어 사용자(인구의 78.1%)를 대변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는 BJP가 이끄는 NDA가 좌파의 INDIA를 누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NDA의 주축인 우파 BJP는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 총리를 두 차례 연임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3연임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인도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체에서 BJP와 모디 총리의 정치 이념인 힌두민족주의의 입김이 더욱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힌두민족주의는 힌두교와 인도 역사에 축적된 정신적·문화적 전통을 기둥으로 삼는 정치사상이다. 식민시대였던 1930년대에 싹튼 사상으로 추종자들은 독립운동 당시 비폭력·시민 불복종운동에 동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무장투쟁까지 벌였다.

주목할 점은 집권당인 BJP가 극우성향의 힌두민족주의 조직인 국민의용단(RSS)을 모체로 한다는 사실이다. RSS는 인도에서 종교적 다수파인 힌두교도의 우월성을 내세우며 소수파인 무슬림(이슬람교도)과 기독교도에 대한 차별을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인도·파키스탄 지역을 지배했던 이슬람의 무굴제국(1526~1857)과 식민 통치(1858~1947)했던 기독교의 영국이 평화를 애호하는 힌두교를 유린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독립 과정에서 인도-파키스탄의 분리를 막으려고 힌두교-이슬람의 화합을 외쳤던 마하트마 간디를 매국노로 부른다. 대신 1948년 간디를 저격하고 처형된 이 조직 활동가 나투람 비나약 고드세를 애국자로 부르며 역사교과서 수정을 요구한다. 또 인도에서 45년간 인도주의 활동을 펼치다 97년 숨진 테레사 수녀도 ‘식민 지배를 목적으로 활동한 매국노’라고 주장한다. 테레사 수녀는 7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이런 RSS는 노동조합·학생운동단체·농민단체 등을 광범위하게 장악하고 BJP의 선거운동에 앞장을 섰던 탓에 이번 총선 이후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모디 총리는 물론 BJP를 창당하고 1990년대 두 차례 총리를 지낸 아탈 바지파이도 이 단체 출신으로 알려졌다. RSS는 이미 모디 총리의 집권 이후 종교적 소수파인 무슬림과 기독교도는 물론, 정권 비판자나 파키스탄과 교류·협력을 주장하는 평화운동가 등을 차별하고 때로 폭력도 행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도 의회의 일부 무슬림 의원이 RSS를 ‘테러 단체’로 부르며 단속을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2024년 인도 총선의 주요 쟁점은 실업과 종교 갈등, 그리고 야당과 야당 정치인에 대한 부패 수사 등으로 압축된다. 인도에선 청년실업률이 유독 높아 핵심적인 정치·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인도 전체의 실업률을 7% 정도지만 청년 실업률은 23.2%나 된다. 특히 2023년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대졸자의 42.3%가 미취업 상태다.

이에 야당 연합인 INDIA는 전략적으로 이 문제에 파고들면서 공무원 일자리를 300만 개 늘려 청년·대졸자 실업을 해결하겠는 공약을 발표했다. 좌파연합 INDIA의 공약은 비현실적이고, 포퓰리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집권 BJP를 비롯한 우파연합 NDA도 경제를 활성화해 실업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원론적인 대책 외엔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청년 실업 문제는 이번 총선의 핵심 이슈다.

먹고 사는 문제도 힌두민족주의와 종교 갈등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2011년 센서스에 따르면 인도는 힌두교도 80%, 무슬림 14.2%, 기독교 2.3%, 시크교도 1.7%, 불교도 0.7%의 다종교 국가다. 인구 분포만 따지면 힌두 지상주의를 내세우면 당연히 득표에 유리하다. 하지만 무슬림·기독교도를 소외시킨다면 자칫 갈등과 증오의 정치로 갈 가능성이 커진다. 인도의 무슬림은 비율로는 소수파지만 숫자로는 2억 명에 육박한다. 기독교도도 3200만 명 가까이 된다. 인도에서 종교 갈등은 현실화하고 있다. 지난 1월 22일 힌두 민족주의 세력은 1992년 힌두교도들이 파괴했던 16세기 모스크(이슬람 사원) 자리에서 힌두사원 기공식을 열어 갈등을 빚었다. 인도는 이번 선거에서 화해와 통합의 민주주의 국가로 가느냐, 종교적 긴장 속에서 분열과 권위주의의 나라로 가느냐의 기로에 섰다고 할 수 있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