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기억] 모내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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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호 31면

모내기, 경기 광주, 1975년 ⓒ김녕만

모내기, 경기 광주, 1975년 ⓒ김녕만

지난주에 서울로 기차를 타고 오면서 차창 밖으로 모내기를 앞둔 논마다 물이 찰랑거리는 풍경을 보았다. 예전에도 봄과 여름이 맞물리는 이 무렵이면 농촌에서는 논에 물을 대고 모를 심느라 분주했었다. 바지를 둘둘 말아 무릎 위로 걷어 올리고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모를 심는데 유난히 거머리가 많은 논에선 발끝부터 무릎까지 더 빈틈없이 중무장하곤 했다. 한번 살갗에 달라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맹렬하게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오죽하면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다’는 표현이 생겼을까.

그러나 모내기 철에 찰거머리보다 더 무서운 게 가뭄이다. 긴 가뭄으로 논이 쩍쩍 갈라지는 바람에 모를 심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이웃 간에 서로 물꼬를 대려는 싸움이 빈번했다. 1년 농사의 성패를 가름하는 일이라서 사이좋던 이웃이라도 얼굴 붉히며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다행히 간밤에 비가 흡족하게 쏟아지면 다음 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어져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농부의 마음을 농부가 알기에 서로 어제 일을 탓하지 않았다. 지금은 기계가 대신해주지만 70년대 농사는 거의 다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모내기가 한창일 때는 교실에 빈자리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고사리손이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모를 심는 동안 아이들은 잔심부름을 맡았다. 논에 새참을 내가는 일이나 막걸리 심부름은 아이들 몫이었다. 물론 아이들도 싫지 않았다. 슬슬 날씨가 더워지는 참에 교실에 앉아 졸음을 참는 것보다 훨씬 즐거웠고 더구나 새참을 얻어먹는 재미에 신이 나서 논두렁을 뛰어다녔다.

이제 막 점심을 배불리 먹고 논에 들어갈 시간, 마음이 다급한 농부의 아내가 먼저 들어가 모를 배분하는 중이고 논두렁에 선 남편은 담배 한 대를 맛있게 피우며 오늘 해치울 일을 가늠해보고 있다. 진흙투성이인 농부의 종아리 사이로 어느새 여름이 밀려오고 있다.

김녕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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