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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 한일관계에 돌출변수 '라인 사태'…"양국 온도차가 불씨 키울 수도"

중앙일보

입력

네이버의 지분 매각 문제를 둘러싼 일본 라인야후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일본 내 9600만 명이 이용하는 최대 메신저 ‘라인’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한·일 간 외교 문제로 비화할 조짐마저 일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극적으로 개선됐던 한·일 관계를 악화시킬 돌발 변수인 셈이다.

지난해 11월 16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념 촬영을 위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자리로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6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한 호텔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기념 촬영을 위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자리로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한·일 간 온도 차가 불씨를 키울 수 있다”며 “정부가 신중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 내에서도 전례가 없는 사안인 만큼 실제 지분 매각으로 이어질지 사태를 지켜보면서 대응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달리 잠잠한 일본 

실제로 일본 내 분위기는 한국과는 딴판이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도 ‘일단 지켜보자’는 기류가 읽힌다.

일본 최대 일간 요미우리신문의 경우 9일자 조간 경제면에 전날 라인야후 측이 밝힌 시정 계획(네이버의 서비스 개발 업무 배제 등)을 보도하면서 한국 내 반발 움직임만 짧게 소개했다. 한·일 간 경제산업 이슈에 민감한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외교 현안으로 불거질 가능성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관련 기사를 냈다.

이데자와 다케시 일본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데자와 다케시 일본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사히신문은 사태를 키운 원인을 짚는 기사에서 정보기술(IT) 업계를 관리·감독하는 일본 총무성과 라인야후 간 갈등에 주목했다. 앞서 총무성은 라인야후에 대해 지난 3월과 4월 두 차례 행정지도에 나섰다. 특히 총무성은 두 번째 행정지도 때 “자본 관계까지 검토하라”고 라인야후 측을 압박했었다. 사실상 네이버의 지분을 일본 기업인 소프트뱅크에 매각하라고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현재 네이버와 소프트뱅크의 지분(라인야후의 지주회사 A홀딩스)은 ‘50 대 50’ 구조다.

신문에 따르면 이는 첫 행정지도 이후 라인야후가 “(네이버와) 네트워크(망) 완전 분리에만 2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보고한 데 대한 “분노”였다고 한다.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경고였단 의미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일본 정부도 라인야후에 대한 행정지도와 별개로 한국 내 비판 여론을 신경 쓰는 모습이다. 익명을 요구한 총무성 간부는 아사히에 “행정지도는 경제안보와 무관하다”며 “설령 한국 기업이 아니더라도 같은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내에선 논란이 되는 네이버의 지분 매각에 대해 “가능성이 작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토 이치로(佐藤一郞) 국립정보학연구소 교수는 “자본 비율 문제는 모회사인 소프트뱅크와 네이버 간 문제로 라인야후는 당사자(가 아니다)”며 “(네이버에 대한 서비스 개발 위탁 종료 선언도) 라인의 과도한 기술 의존도를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선 “정부 손놓았다” 비판

하지만 한국에선 “지분 매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도, 정부가 너무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창건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실질적인 대응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며 “물밑 조정을 해서 한·일 관계를 관리하겠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에서 국민 여론이 악화하면 독도 문제처럼 감정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이달 말 개최가 예상되는)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일본과의 양자 회담에서 사태가 더 확대되지 않도록 조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일본 측이 네이버의 한국 내 데이터센터를 문제 삼는 만큼 이를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지평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는 “현재 네이버는 이사회에서 축출돼 주식만 갖고 있을 뿐 경영자유도는 많이 떨어진 상태”라며 “네이버가 총무성에 먼저 데이터센터 이전 등과 같은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이사회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해야 이후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네이버 본사.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네이버 본사. 연합뉴스

이 교수는 또 “일본 정부도 다양한 측면에서 민간 기업의 지분 문제에 개입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네이버에 투자한 미국계 투자자들이 반발할 경우 매우 부담스러운 만큼 네이버가 자구책을 내놓으면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일각에선 총무성을 이끄는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총무상의 배경에 주목한다. 마쓰모토 총무상의 외고조부가 일본 초대 총리이자 통감부(조선총독부의 전신) 초대 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인데, 이런 사실이 부각될 경우 사태의 본질과 무관하게 반일 감정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외교부 “섣부른 개입은 자제”

한편 9일 외교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섣부른 개입은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외교부 당국자는 “개별 기업 영업 활동에 정부가 관여할 수는 없다”며“다만 우리 기업이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지 않고, 현지 시장에서 공평하고 투명하며 공정하게 기업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해당국과 협의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네이버의) 입장과 요청 사항이 정리되면, 그에 따라서 정부가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게 순서”라고 덧붙였다. 네이버와 소통하면서 구체적인 요청이 있을 때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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