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 단정」 처음부터 무리/원점회귀 「화성 연쇄살인」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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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물증없고 목격자 진술 일치 안해/“12명 추행” 피해자 한명도 못찾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9번째 희생자인 김모양(14)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경찰이 지목한 윤모군(19)이 22일 오후 사건현장인 화성군 태안읍 병점5리에서 현장검증도중 자백을 전면 부인해 검증이 중지됨에 따라 수사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윤군은 1백여명의 동네주민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몹시 불안한 태도로 현장검증을 받다 『형사님들이 무서워 시키는대로 했으나 나는 범인이 아니예요』라고 두차례 소리치며 자백을 완전히 뒤집어 경찰이 강압적인 방법으로 윤군의 자백을 유도하지 않았나하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검찰은 『윤군이 자백을 재번복하기 전까지는 현장검증을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화성사건 「진범」 논쟁은 새로운 논란을 빚게 됐고 경찰의 도덕성에 또한번 흠을 남길 가능성이 커졌다.
경찰이 윤군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내세운 증거가운데 목격자 부분과 자백의 상당부분이 범행사실과 일치하지 않아 윤군 진범 단정에는 처음부터 의문이 제기됐었다.
경기도경 간부들은 『지난 21일 사건당일 현장부근에서 윤군이 사건현장쪽으로 올라가는 목격자 3명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목격자로 지목된 윤양(21) 등은 『윤군을 알고 있으나 사건당일 윤군을 포함해 누구도 본적이 없다』며 목격 사실을 완강히 부인했다.
경찰은 또 지난 18일 윤군을 구속하게된 강제추행 사건이 친고죄에 해당하자 미리 고소장을 만든 뒤 피해자 정모양(21)에게 억지로 도장을 찍게한 사실도 밝혀졌다.
정양은 윤군을 범인으로 지목한 적은 없으며 『키와 걸음걸이가 비슷하다』고 하자 경찰이 미리 만들어둔 고소장에 손도장을 찍게했다고 말해 화성 사건은 범인검거는 못한채 「인권유린수사」시비만 자초한 인상이 짙다.
경찰은 윤군이 정양 강제추행 외에도 모두 12차례의 강간·추행사실을 자백했다고 밝혔으나 자백 5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단 1명의 피해자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어 자백의 임의성이 의심받고 있다.
경찰은 현장검증 전까지만 해도 ▲윤군의 자백을 토대로 확보한 목격자와 ▲윤군 점퍼 소매 안감에서 발견된 A형 혈흔 ▲사건현장 1m 옆 소나무잎에서 채취된 혈흔반응 등 증거가 확보돼 추가기소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윤군의 자백이 뒤집히고 목격자 확보주장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면서 혈흔반응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점퍼 혈흔은 지난 19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정밀분석시에는 발견되지 않다가 다음날 윤군의 자백에 따라 점퍼만 따로 반응검사를 한뒤 『발견됐다』고 발표했었다.
솔잎 혈흔반응도 의문이 제기되는 부분.
경찰은 사건발생초기 김양 사체를 중심으로 20m 반경내를 말끔히 뒤져 혈흔반응 검사와 모발 채취작업을 벌였으나 모발 20여개를 수거한것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가 한달 이상이 지난 21일 밤 『윤군 자백에 따라 솔잎에 대한 혈흔반응 검사를 해보니 혈흔반응이 나타났다』고 밝혔었다. 전체적으로 윤군 진범단정은 강압으로 꿰맞춘 듯한 인상을 진하게 풍기고 있다.
물적증거와 정황증거를 토대로 범인을 찾아내는 「귀납적 방식」이 아니라 심증과 이에따른 임의성에 의심이 있는 자백을 토대로 물증과 정황증거를 찾아내는 「연연적 방식」의 「억지수사」라는 지적이다.
경찰이 이같은 의문과 의혹을 말끔이 씻을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일단 윤군을 용의선에서 과감히 풀어주고 원점부터 수사를 다시 해야만 더이상의 과오를 면할 수 있을 것 같다.<수원=이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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