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할 입시풍속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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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기대 입학 학력고사가 끝났다. 짧게 잡아 1년,길게는 3년 이상 실로 형설의 공을 기울여 쌓은 학력을 가늠하는 하루였다.
이 자리에서 새삼 대학을 향한 과열입시풍조와 그로 인한 학교교육의 파행성을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해마다 입시를 치를 때마다 지적되게 마련인 고사 당일의 여러 꼴불견과 문제점이 조금도 개선되는 바 없이 반복되고 증폭된다는 사실을 개탄하게 된다.
아무리 서둘러 용의주도하게 고사장에 도착하려 해도 이미 고사장 부근의 1㎞쯤에 이르면 승용차의 홍수로 더 이상 나갈 수가 없게 된다. 8시10분 입장을 지키려고 서둘러 나왔지만 버스 속에서 갇혀 조바심만 태운다.
학교정문에서 고사장까지의 거리는 또 얼마나 먼 곳인가. 간신히 버스에서 내리면 허겁지겁 뛰게 된다. 그러나 승용차는 정문을 통과해 걷는 수험생의 앞을 막으며 유유히 고사장까지 들어간다. 자기 자식이 편안히 고사장에 들어가게 하려는 부모의 욕심이 남의 자식의 길을 막는 폐단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연출하는 것이다.
버스와 승용차의 상대적 빈곤감을 씹으며 교정에 들어서면 요란한 현수막,우레같은 함성이 터져나온다. 고등학교마다 나온 응원단이 경쟁하듯 함성을 울리며 지방에서 올라온 외톨이 입시생의 기를 죽이고 주눅들게 한다.
시험 자체야 어쩔 수 없는 경쟁이라 하지만 시험장의 주변 풍경마저 경쟁을 북돋우고 전의마저 풍기게 해야 할 것인가.
고사장 부근의 엿이 동이 나고 상인을 찾는 소리,자동차 경적,응원단의 함성이 겹쳐 고사장 풍경은 학력을 겨루기보다 힘을 겨루는 운동장을 방불케 한다.
차분하고 정숙한 분위기로 시작되어야 할 고사장이 마치 출정식처럼 또는 장터처럼 살벌하고 붐벼서야 될 것인가.
94개 대학 5백16개 고사장에서 치러지는 하루의 새벽시간에 전국에서 수험생 66만명이 이동하고 학부모·응원단까지 합치면 그 짧은 1시간여 동안 무려 2백여 만 명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게다가 동원될 수 있는 차량은 모두가 동원된다.
공무원·회사원의 출근시간이 10시로 늦춰지고 입시 당일은 몽땅 입시를 위해 바쳐진다. 올해엔 눈이 내리지 않아 큰 혼란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올해같은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교통난 때문만도 아니다. 평일에 고사장을 빌리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형편인데도 문교부와 대학측은 일요근무와 종교계의 반발을 내세워 입시를 일요일에 치러야 한다는 여론을 깔아뭉개고 있다.
적어도 입시 때문에 막중한 국가의 업무가 지연되고 분초를 다투는 경제활동이 늦춰지는 것에 비한다면 일요일 대학입시에 따른 몇몇 문제점은 극복될 수 있다. 내년부터는 대학입시를 일요일에 치르도록 문교당국은 성의있는 배려를 해야 할 것이고 꼴불견의 고사장 풍경도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고쳐나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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