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겨냥 힘 모으는 구여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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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내년에 펼쳐질 각종 선거정국을 앞두고 민자당외곽에 포진해있는 구 여권 세력들이 진로모색을 위한 여러 가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결집 정도에 따라 정국흐름에 변수로 등장할 수 있고 노태우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정국운영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어 파장의 잠재력이 주목을 끌고있다.
청와대와 민자당은 범여권의 결속을 내세워, 이들과의 재결합, 새로운 제휴를 타진하고 있으며 5공 세력 중에는 신당 창당 설도 나오고 있어 앞으로 지방의회선거·국회의원선거· 민자당 차기대권주자 선출·대통령선거 등 92년 말까지의 숨가쁜 정치일정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권의 장외세력인 이들의 최근 동정에서 관심을 끄는 것이 내년1월15일 구 민정당 창당 10주년 기념행사 준비다.
이재형 전국회의장을 「얼굴」로 하고 권정달 전 민정당 사무총장이 실무집행을 맡아 올림픽유스호스텔에서 1천여 명의 구민정당「동지」를 모아놓고 창당을 회고한다는 것.
모임을 준비중인 한 인사는『창당 10년을 맞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자연스럽게 뜻 맞는 사람끼리 기념식을 갖자고 해 추진하는 것』이라며 어떤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5공 세력의 재기」라는 시각을 의식해 현 국회의원이나 정부요직에 있는 사람은 초청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자신들의 행사가 6공에 대한「대항」, 지자제실시를 앞둔 영향력 행사 등 정치집회로 받아들여지는데 신경을 쓰는 눈치다.
그러나 내심 기념행사가 정치적 활로모색의 기회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구 민정당의 중집 위원을 지낸 모인사는 『기념행사에 대한 정계의 시각, 거부반응의 정도를 따져 이런 성격의 모임이 2, 3차례 계속될 경우 정치적 발판 마련이 검토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창당10주년 기념행사에 대해 백담사 쪽은 표면적으로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대외 창구 역인 이량우 변호사는 『우리와도 어떤 의논을 한 적이 없다』고 지원 세를 부인했다. 그러나 5공인사중에는 5공의 복권을 위한 신당추진을 강력히 제안하고 있어 주목되고 있다.
이와 별도로 3당 통합으로 지구당위원장자리를 잃어버린 구민정당 위원장들의 모임인 민정동우회(회장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는 민자당의 풍토를 격렬히 비판하면서 국회의원후보의 자유경선, 3금씨가 지배하는 정치적 갈등구조의 해소를 내걸고 새 입지를 찾아 나서고 있다.
13대 공천에서 떨어진 11, 12대 전직의원들의 모임인 민우회(회자 김숙현 전 의원)도 6공 정치판도 속에 지분을 찾고 있다.
이들은 6공 권부의 소외세력으로 섭섭함을 느끼고 있고 구심점만 있으면 한쪽으로 쏠릴 수 있지만 정국에 대한 시각과 색깔에 다소 차이가 있어 일각에서 전망하는 신당 태동의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신당의 간판이 되어줄 인물이 마땅치 않으며 정치자금 염출도 쉽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의 초점은 백담사 쪽이지만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하산시기는 불확실한 상태다. 현재로선 내년1월18일 전씨가 「산사 회갑」을 맞고 겨울동안 거처를 옮기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될 뿐이다.
이양우변호사는 『하산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으며 그 문제는 옆에 있는 우리들이 실무적 검토를 할 사항도 아니고 전 전대통령이 스스로 결심할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청와대와의 하산협의 설에 대해 『청와대 쪽에서 하산에 대해 어떤 입장과 논의를 해온 적이 없다』며 청와대-민자당-백담사의 관계에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전씨는 현재 자신을 찾아와 정치적 입장 표명을 기대하는 구 여권 인사들에게 자신의 발언을 삼가고 있으며 『아직 때가 아니다』는 시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침묵이 「한시적」일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하산과 정치적 재기의 신호가 관심을 끈다.
1월18일의 그의 회갑연이 어떻게 치러질지, 어떤 규모의 사람이 모일지, 이에 앞선 1월15일의 구민정당강당 10주년 기념행사와 어떤 연관이 맺어질기 주목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청와대와 민자당 측은 6공 출범, 5공 청산, 3당 통합과정에서 흐트러진 범 여권의 결속을 위한 활발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이 창구는 김윤환 총무가 거의 전담하고 있는 상태.
김총무는 지난 11월30일 이재형 전 국회의장·왕상은·이범준 이상익 전의원과 만나 인사를 하고 6공에 대한 이들의 섭섭함을 달랬다는 후문.
백담사 쪽과 별도의 채널을 갖고있는 이상익 전 의원에겐 5공과 6공의 제휴문제를 우회적으로 타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총무는 또 민우회의 김숙현회장, 염길정·최명헌·강경식·박익주·박권흠·박경석·이대순·정재철·정남 전의원 등을 만났고 지난 14일엔 민정동우회의 장성만회장·배명국· 유흥수· 김정남·이용택·한갑수 전의원과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6공 출범을 위해 함께 노력했는데 『사람관리를 이렇게 할 수 있느냐』,『다음 대권후보가 누구냐』 며 섭섭함과 정국운영방안을 물었고, 김총무는 장외에 있는 전직의원들을 위해 ▲국회의원 선거구 증구가 되면 우선 소화 ▲지방의회선거 진출 권유▲국영기업체 이사장 등으로 전출하는 방안을 제시, 협조를 부탁했다는 것.
김총무의 구 여권과의 접촉은 지난번 내각제 각서 파동 때 김영삼대표의 「마산가출」을 보면서 구 여권의 결집 필요성을 재삼 인식했다는 것이며, 청와대도 범 여권 단결의 시급함을 노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노대통령의 레임덕(임기후반기 권력누수) 방어작전의 일환일 것이라고 추측.
청와대·민자당의 또 다른 관리대상은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정호용전의원. 그는 정치 혐오론을 되풀이하고 있으나 주변에서는 14대 출마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민자당 쪽에선 권익현 전대표의 공직복귀 설이 나돌고 있으며 그를 지난번 남미특사로 파견한 것은 이를 뒷받침 한 것이라는 얘기. 그러나 권씨 본인은 일체 침묵하고 있으며 그의 측근들은 특사와 정치적 앙금의 청산은 별개라고 설명.
미국에 있는 정호용씨는 지난가을 딸 넷 중 셋을 미국에 데려갔으나 내년 4월께 귀국할 뜻을 비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김영삼 대표도 5공 쪽과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는 관측이 있으며 김대표는 이미 권익현 전대표를 비밀리에 만난바 있고 정호용씨 지지세력들과도 교감중이며 5공 핵심인 허삼수씨를 지구당위원장(부산동)에 앉히고 자신이 구속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이학봉씨와도 관계개선을 하고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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