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크로스 패션 영역확장 … "우리 팬티 바꿔 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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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팬티로 착각할 정도로 화려한 자수 무늬가 들어간 남성 팬티와 남성 제품에만 사용되는 앞트임이 눈에 띄는 여성 팬티. [협찬: 좋은 사람들, 사진=김성룡 기자]

"너도 여자 팬티 입어봐. 촉감도 좋고 진짜 편해."

미국의 유명 시트콤 '프렌즈'에서 엉뚱하기로 소문난 조이가 챈들러에게 던진 말이다. 한낱 웃음의 소재였던 '여성 속옷 입은 남성'이 요즘에는 현실이 됐다. 레이스와 T 팬티 등 여성의 속옷 디자인을 차용한 남성 속옷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

메트로 섹슈얼로 촉발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묘한 혼합은 이제 '크로스 섹슈얼'이라는 말까지 등장시켰다. 크로스 섹슈얼이란 여성적 코드로 치장한 남성을 일컫는 말로 남성성과 여성성의 혼합을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여성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남성을 뜻한다. 여성화된 남성 패션 못지않게 남성화되고 있는 여성 패션 아이템도 늘고 있다. 1980년대 스타일의 재등장과 블랙의 유행 등으로 매니시한(남성스러운)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는 것이 주된 이유다.

# 페미닌 남성 속옷 vs 보이시 여성 속옷

여성성과 남성성이 가장 명확하게 갈린다는 속옷에서도 서로의 영역 침범이 진행 중이다. 여성 속옷에나 사용될 만한 디자인 컨셉트를 과감히 차용한 남성 팬티 제품이 눈길을 끌고 있다. 화려하다 못해 언뜻 보면 여성 팬티로 착각할 정도다. 섹시쿠키에선 여성 란제리에나 쓸 법한 엄청난(?) 크기의 꽃무늬가 있는 남성 팬티와 함께 화려한 자수 무늬 제품, 벨벳 느낌이 나는 소재의 T 팬티를 내놓았다. 특히 자수 무늬 팬티는 앞판 대부분을 핑크 바탕에 블랙 자수로 수놓는 파격을 감행했다.

섹시쿠키 전지연 디자이너는 "과거 남성 속옷은 여성 속옷과 디자인 컨셉트를 철저히 구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구분이 없어졌다"고 최근 경향을 설명했다.

반면 여성 팬티는 보이시한 느낌의 제품이 인기다. 남성 속옷에나 사용되는 넓은 허리 밴드가 사용되는가 하면 심지어 앞트임도 있다. 물론 앞트임은 장식이다. 넓은 허리 밴드가 활용되는 것은 스포티한 느낌을 준다는 이유. 이와 함께 여성 팬티라면 으레 들어가던 러플과 레이스 등 장식성이 완전히 배제되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이 주류로 떠올랐다. 컬러는 여전히 핑크와 노랑 등 여성적인 컬러를 사용해 중성적 이미지를 풍긴다. 또 여성용 트렁크 팬티도 남성 트렁크의 편안함을 활용한 제품이다.

구매 패턴도 변하고 있다. 애인 선물용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입기 위해 사는 비율이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섹시쿠키의 자수 무늬 남성 팬티의 경우 10월 커플 제품으로 출시됐지만 남성 구매자에 의한 단독 판매가 60%에 달하고, 역시 커플용으로 출시된 꽃무늬 팬티도 커플 세트 판매 비중과 남성 단독 판매 비중이 5대 5로 똑같다.

# 스키니 팬츠를 입는 남성 vs

와이드 팬츠를 입는 여성

겉옷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주로 80년대 패션이 다시 돌아오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80년대는 '유니 섹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호하게 결합되던 시기. 쫄바지를 입은 남성과 가죽 점퍼를 입는 여성이 어색하지 않던 시기다.

여성복인 베스띠벨리 박성희 디자인 실장은 "올 하반기 매니시룩의 영향으로 남성복 느낌의 스타일이 눈에 띈다. 특히 정장의 경우 마치 남성 예복을 입은 듯 어깨가 강조되고 바지는 다리 라인이 드러나지 않도록 통이 넓은 와이드 팬츠가 많다"고 말했다. 신원 관계자는 "지난해 가을.겨울 시즌에 비해 올 시즌 숙녀복 판매량의 경우 스커트 정장은 6% 정도 감소했지만 바지 정장은 15% 정도 늘었다"며 매니시룩의 유행을 설명했다.

여성들이 매니시룩으로 남성성을 표현하고 있다면 남성들은 스키니 팬츠로 각선미(?)를 뽐내고 있다. 레이어드룩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의류 브랜드 코데즈컴바인 관계자는 "많은 남성이 보디라인을 그대로 드러내는 스키니 팬츠를 선택하고 있다. 올겨울에는 청바지는 물론 아웃포켓의 카고 팬츠나 면바지 등도 슬림하게 디자인된 제품이 많다"고 말했다.

조도연.강승민 기자<quoiqu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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