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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리더십, 한국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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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들이 두바이에서 진정으로 감탄하는 것은 쭉쭉 뻗은 고층 건물이나, 바다에 자리 잡은 인공섬이 아니다. 이런 꿈 같은 일들을 척척 이뤄내고 있는 두바이의 왕 셰이크 모하메드의 리더십이 경탄의 대상이다.

두바이의 성공 비결을 그의 리더십에서 찾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통치자의 장기적인 비전과 무한한 상상력, 그리고 강력한 추진력이 '사막의 기적'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를 배우거나 따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두바이와 한국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두바이에선 왕의 임기가 없다. 종신집권 체제다. 정책노선을 달리하는 야당이나, 목청 큰 시민단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왕의 한마디가 곧 법이요, 정책이다. 무슨 일이든 한번 정해지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계몽군주의 영민함 덕에 눈부신 성과를 내고는 있으나 우리의 사표(師表)가 될 만한 선진국은 아니다.

우리와 두바이는 민주화.다원화.분권화의 수준을 서로 비교할 수 없다. 바다에 흙을 퍼부어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별장을 짓고 있는데, 이게 도대체 우리나라에서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새만금 사업만 해도 10년 넘게 끌고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강력한 리더십이 추진하는 개발독재형 성장은 우리가 이미 졸업한 모델이다. 민주화를 되물릴 수는 없다. 이제 와서 '아, 옛날이여'라며 아쉬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간 시대착오적인 '박정희 향수'에 젖기 쉽다.

노무현 정권의 리더십 상실에 대한 실망 탓일까, 많은 사람이 리더십에는 '강력한'이라는 수식어가 세트로 따라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리더십은 반드시 강력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강력하다고 반드시 번영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다. 김정일의 북한이나 카스트로의 쿠바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게다가 이념적 색채가 짙은 현 정권에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이념적이면서 강력하기까지 한다면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냐 전제주의냐를 한 축으로 놓고, 통치의 지향점을 이데올로기냐 실사구시(實事求是)냐를 다른 한 축으로 놓아보자. 우리가 이념형 민주주의라면 두바이는 실용형 전제주의다. 정반대의 조합이다. 또 북한과 쿠바는 초강력 리더십을 갖춘 이념형 전제주의다. 경제적 번영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

이를 감안하면 리더십이 강성이냐 연성이냐는 경제발전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어 보인다. 물론 경험상 개발 단계에선 강력한 리더십이 효율적이라고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리더십의 지향점이다. 이념이냐 실용이냐에 번영의 갈림길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바이.상하이.싱가포르가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실용주의형 리더십 덕분이다. 그동안 우리가 숱하게 했던 벤치마킹의 결론은 바로 여기에 있다.

6개월 전 두바이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 충격은 실용형 리더십으로 결실을 봐야 하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아직까지 변화가 안 보인다. 이제라도 충격의 여운을 복기해보기 바란다.

남윤호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