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의 사랑|이근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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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올해도 변함없이 시아버님께서 쌀 한 가마니와 갖가지 잡곡을 정성스레 가득 채운박스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부부간의 사람과 존경을 강조한 친필의 서신도 빠뜨리지 않고 보내셨다.
도시생활이 그렇듯이 파 한 뿌리, 마늘 한쪽도 사먹어야 하는 실정이라 시아버님이 보내주시는 곡식과 양념은 우리의 빠듯한 살림에 큰 도움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추수가 끝날 무렵이면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자식들 서넛이 다 서울에서 나름대로 자리잡고 살고있는 것을 아버님께선 늘 대견해하신다. 그리고 며느리들을 볼 때마다 부모가 물려준 것이 없어 너희들이 고생이 많다며 그저 말없이 가계부를 꾸려나가는 것에도 고마워하신다.
이젠 좀 편하게 서울에서 같이 사시자고 해도 아버님·어머님은 고향산소를 지키며 공기 좋은 곳에서 사는 것이 건강에 좋다며 번번이 자식들의 간청을 마다하신다.
워낙 먹는 것도 귀하던 그 어려운 시절 아버님께서는 생활을 위해 만주까지 가서 혹독한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그때 얻은 속병들은 지금까지도 아버님을 괴롭히고 있다. 그래도 병마와 싸우며 논밭을 일구시고 소를 키우시며 몸에 밴 부지런함으로 아버님은 건강을 많이 회복하셨다. 한톨의 쌀이 입에 들어오기까지 농부의 손이 88번 가야한다고 들었다. 『아버님 감사합니다』란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
이번 추석명절에 마련해드린 컬러TV 앞에서 잠시 겨울을 피해가실 아버님·어머님. 곡식과 함께 보내주신 땅콩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긴 겨울 내내 할아버지·할머니의 사랑을 마음껏 얘기하렵니다.
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대명아파트2동5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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