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구성 방송위-제목소리 낼 인물 아쉽다|역할 싸고 학계·방송계서 「위상 정립」 목청 높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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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새 방송법상 지난달 말까지로 돼있는 재구성 시한을 넘겨 「법적인 업무 공백」상태 속에 놓여있는 방송위원회의 위상 정립이 시급하다는 소리가 높다.
방송 민주화와 독립성 확보차원에서 88년 8월 방송정책의 최고 결정기구로 출범했던 방송위원회가 지난 2년 4개월간의 행적에서 드러낸 문제점과 앞으로 안게될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학계와 방송계에서 방송위의 재구성을 앞두고 근본역할 자체에 상당한 회의를 갖고 있는 것은 최근의 방송가 격변과 무관치 않다.
가깝게는 방송 구조개편 때 방송 정책기구로 나서서 거들 수 있는데도 법적으로 참여·발언권이 없다는 이유로 민방의혹 등을 놓고 시종일관 외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은 오해의 소지를 남기기에 충분하다.
지난 4월 KBS사태의 경우 방송위 차원에서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분위기에서 뒷짐만 지고 있었던 것도 문제가 있다는 게 학계·방송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물론 법적 구속력 등에서 방송위 업무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토론회 개최·백서발간 등 방송위 나름의 활동을 펼쳤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종전의 12명으로 구성된 방송위원이 새 방송법에 따라 9명으로 줄어들고 입법·사법·행정부에서 각각 3명을 추천하는 제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믿고 있다.
국회에서 임명이나 다름없는 추천권을 행사, 위원을 뽑아놓고 문제를 따지는 것이나 손해배상·명예훼손 등 때론 방송행위의 궁극적 판단을 맡은 사법부에서 위원을 보내놓고 「옳다, 그르다」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결국 올바른 위상 정립을 위해 공보처 장관의 추천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 그나마 바람직하고 책임 있는 운영을 기대해볼 수 있는 방안의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절차보다 인물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방송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자질 없는 위원이 문제지, 제도 자체가 문체는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자질·전문성·독립적 수행 의지만 위원 스스로 가지고 있다면 여당 추천인사가 많아도 문제삼을게 없다고 봅니다." "누가 임명했느냐 보다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양식과 능력이 있는 사람인가가 중요하다"는 한국외대 김우룡교수(47·신문방송 학)의 말이다.
조만간 공식으로 출발할 새 방송위의 구성위원 각자에 쏠릴 관심이 큰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그랬듯이 이들 중 상당수가 비전문인으로 채워진다면 종래 일부에서 일었던 「비전문인 논란」이 재기될 것으로 보인다.
6공 초기에 정부의 방송통제를 막아내는데 일조를 하기도 하고 방송편성의 기본지침 수립, 방송프로그램의 심의활동도 그런 대로 활발히 하는 등 현 방송위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방송의 감독·규제기관이자 편성지침·심의평가·연구기능 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법적 뒷 받침이 없어 방송계의 큰 사건 때마다 소외됐다는 인상을 주고있는 방송위가 방송정책 입안, 방송이 나아갈 편성의 방향 등 거시적 입장을 가져야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김기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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