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그룹 "우릴 딛고 가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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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이 '개혁 상품'으로 홍보해 온 기간당원제를 폐지하는 당헌.당규안을 22일 확정했다. 당장 친노(親盧) 그룹은 "우리를 소수로 만들어 딛고 가려는 것"(김형주 의원)이라고 반발했다. 정계개편을 앞둔 세력 간 힘겨루기가 엿보인다. 당내에선 "장차 큰 불씨가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 기초당원제 확정=당 비상대책위는 21일 저녁 회의를 열고 기간당원제 폐지를 주 내용으로 하는 당헌.당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2일 오전 회의에서도 재차 확인했다. 우상호 대변인은 "지방자치 선거 때 시행해 본 결과 당비 대납 등 여러 가지 폐단이 나타나 개선하게 된 것"이라며 "개선된 제도는 이 시점부터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제도는 당원의 문호를 확 넓혔다. 그 전의 기간당원은 6개월 이상 당비를 내고 매년 한 차례 이상 당 행사에 참가해야 했다. 유시민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기 전 당을 정예화시키겠다며 주도해 만든 것이다. 유 의원은 이 과정에서 정동영 전 의장과 갈등을 빚기도 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3개월 이상 당비를 내거나 매년 두 차례 이상 당 행사에 참가만 해도 기간당원 같은 권리를 갖게 된다. 당에 공로를 세워도 그런 권리를 갖는다. 새 제도에선 기간당원이란 이름이 없어지고 그에 해당하는 '기초당원'이 신설된다.

<그래픽 참조>

당 관계자는 "선거를 치러본 사람은 누구나 기간당원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안다"고 했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당원) 요건을 엄격하게 했더니 젊은 사람들만 시끄럽게 굴게 됐다는 불만이 많았다"고 전했다. 당원엔 친노 성향의 청년층이 상대적으로 많다.

◆ "당을 허물려는 결정"=우상호 대변인은 이날 "당원제도 개선이 정계 개편과 관련돼 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제도 개선은 5.31 지방선거 직후부터 검토됐다"고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시기가 미묘하다. 당원의 자격 요건은 바로 당내 세력분포로 연결된다.

특히 내년 2월 전당대회는 대선을 관리할 지도부를 뽑는 행사다. 당원들이 어떤 지도부를 뽑느냐에 따라 대선 구도가 정해진다. 정계 개편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열린우리당+민주당+고건의) 통합신당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기간당원제에 부정적이다.

이번 결정으로 기존 당원 구조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당장 친노 세력인 참정연(참여정치실천연대)이 반발하고 있다. 김형주 대표는 "비대위의 결정이 합법적인 것인지 내부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원들의 반발도 예사롭지 않다. 기간당원들 사이에선 "기초당원제에 반대하는 모든 정파가 연합체를 만들자. 또 임시 전국대의원대회를 열어 기초당원제 안을 무력화하자"는 사이버 사발통문이 돌고 있다. "통합신당파는 탈당하라"는 요구도 나온다. 다음달 8일엔 전국당원대회도 열린다.

고정애 기자

◆ 기간당원제=당비를 내는 당원에게만 공직 선거권,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열린우리당의 당원 제도. 유럽식 당원 제도가 모델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2002년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했을 때 처음 도입했다. 열린우리당이 초기 '백년 정당'을 얘기할 때 근거로 거론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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