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오른 곡예사 아들… 영 메이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가난속의 인간승리」… 보수당수 되기까지/고교중퇴… 영 금세기 최연소 총리 기록/18세에 은행원 시작·79년에 하원진출… 고속 성장/가정교육은 눈먼 아버지가… “누구도 싫어않는 인물”
존 메이저 영국 차기총리는 역경을 이긴 입지전적인 인물이자 소탈하고 대중적인 면모로 「누구도 싫어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소시민적 젊은 정치인이다.
메이저의 정치적 승리는 그의 출신·경력배경으로 인해 집권 보수당에는 새로운 활력을,기층 저소득층에는 희망을 불러 넣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메이저는 기존 보수당 정치인들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학을 나와 사회경험을 쌓고 정치에 입문하는 소위 왕당파코스를 거치는 것과는 달리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삶을 살아왔다.
그는 고등학교 중퇴의 경력으로 귀족적인 보수당에서 초고속 성장을 해 20세기 최연소 영국 총리에 오르게 됐다.
메이저는 보수당 당수확정 직후 『능력에 따라 어떠한 위치에도 오를 수 있는 계급없는 순수한 사회』가 자신의 목표라고 언급,그의 출신배경을 암시하고 있다.
올해 47세의 메이저는 1894년 로스베리백작 이후 1백여년만의 최연소 영국 총리. 그는 79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가장 빠른 정치적 성장을 기록했다.
그는 43년 서커스단의 그네타기 곡예사겸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영재들이 다니는 러틀리시 공립학교에 다니다 16세때 가정형편으로 중도에 그만뒀다.
66세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자마자 앞을 못보는 장님이 됐다.
메이저는 어려서 눈먼 아버지를 이끌고 산책을 나가곤 했는데 지식이 풍부하고 이야기꾼이었던 아버지는 차분한 목소리로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어려서의 이러한 경험이 메이저가 조용한 목소리의 타협에 능한 정치인이 되는데 크게 기여했다.
학교를 그만둔 후 8개월 동안 빈민에게 지급되는 사회보장비로 생활하기도 한 그는 18세때 은행원으로서 사회의 첫발을 내디뎠다.
메이저는 은행원으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4년만에 행원에서 영국 스탠더드 앤드 차터드 뱅크의 이사자리에 올라 정치에 입문할 때까지 14년동안 금융·재정분야의 경험을 쌓았다.
79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메이저는 은행에서와 같이 빠른 속도로 성장,11년만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메이저의 고속성장 배경에는 대처 총리의 후원이 있었다.
대처 총리는 그의 온화한 말씨와 예리한 정치적 판단력,탁월한 협상능력을 높이 샀다.
대처 총리는 메이저를 「대중의 사람」이라고 측근들에게 지칭했으며 정적들 조차 메이저를 「좋은 사람」으로 불렀다.
메이저는 정치인이 된 후 보수당의 우파에는 자유시장경제제도를 호소하고 좌파에는 하층민들을 위한 동정을 호소함으로써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80년대 동안 대처 총리의 계층타파 원칙의 화신으로,또 명쾌하고 결단력 있는 두뇌의 소유자로서 그의 장점을 한껏 발휘했다.
그는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대처 총리의 인플레이션 경제정책을 냉정하게 실행하는 것은 물론 유럽통화 단일화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점진적 접근을 추진함으로써 주위의 존경을 받았다.
정치 소식통들은 그가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 대처 총리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고 말하고 있다.
총리로 확정된 후 그는 외교문제에 대한 경험부족을 외교의 베테랑인 허드 현 외무장관에 맡겨 해결키로 했다고 밝혔다.
메이저의 외교경험은 3개월동안 외무장관을 지낸 것이 모두다.
메이저는 79년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후 87년 재무부 수석차관으로 입각,89년 3개월 동안 외무장관을 역임한 후 같은해 10월 사임한 니젤로슨의 뒤를 이어 재무장관에 취임했다.
「가난속에 핀 장미」로 비유되는 메이저는 지난 70년 현재의 부인 노마 존슨과 결혼,19세 된 딸 엘리자베스와 15세 된 아들 제임스를 두고 있다.
부인 노마는 오페라에 조예가 깊어 유명한 오페라가수인 존 서덜런드의 전기를 집필,87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김상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