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안올린다더니…"|"5조 기금 어디 쓰고…"|국민 우롱한 기름 값 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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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정부는 25일 0시를 기해 휘발유·등유의 소비자가격을 28% 전격적으로 인상한데 이어 연내지하철 25%, 항공요금 19%, 청소 료 10% 등 공공요금도 인상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또 내년 초에 벙커C유·경유·LPG·LNG까지 비슷한 폭으로 인상할 계획이라고 하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겉으로는 한자리수 물가를 강조하면서 정부가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가 및 공공요금을 30% 가까이 눈 하나 깜짝 않고 마음대로 올리고 있으니 국민들의 경제생활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다.
추곡수매가·근로자들의 임금인상은 물가에 미치는 영향 운운하며 서슬 퍼렇게 한자리 인상으로 틀어막고서는 정부주도의 유가 및 공공요금은 올렸다 하면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대폭 인상하는 것은 무슨 경우 인가.
페만사태가 발생했을 때 국내유가는 변동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 것도, 연내에는 유가 인상을 않겠다고 큰소리친 것도 다 없었던 것으로 치부해 버린 것인가.
이로써 정부는 신뢰도를 스스로 실추시켜 버렸다. 알려진 대로 정부는 10년간 제3의 유가파동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5조4천억 원 이상의 석유사업 기금을 적립해 왔다. 이 제도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제도로 국민들은 기름 값을 더 지불한 이 돈이 유사시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런데도 이 돈을 적절히 사용해 보지도 않고 페만사태가 장기화되자 이를 빌미로 제3의 유가파동이 우려된다며 또다시 인상부담을 국민들에게 떠넘기고 말았다.
그 동안 불평 한마디 없이 비축기금을 내면서 기름을 써 왔던 국민들은 이번 정부의 유가인상에 따라 또다시 석유 사업기금의 용도에 커다란 의문을 품고 있다. 이 돈은 어디에다 쓰려고 그렇게 꽁꽁 묶어 두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이번 유가인상 명분중의 하나가 에너지 소비절약을 위한다는 것인데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유가인상 때마다 그랬듯이 처음 얼마간은 소비가 주춤할는지 모르지만 시일이 지나면 또다시 소비가 늘어났었다.
따라서 에너지 소비절약 차원에서의 유가인상은 장기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정부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고 있는 모든 사업들이 국민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것도 구시대적발상인 행정 편의주의 정책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유가 대폭 인상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을 위한 정부라면 진정으로 국민들의 편에 서서 물가정책을 포괄적으로 다뤄 나가길 바란다. 고 물가·고 임금이라는 고리의 단절은 합리적으로 상승요인을 제거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채경숙<서울 용산구 한남동 62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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