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문화 정착 당국이 선도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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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3일 개최된 인천지역 사회·정당·종교단체 등의 「폭력비호 민자당의원 사퇴촉구대회」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당국과 대회 주최자간의 승강이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사회의 인식이 아직도 두 갈래로 나눠져 평행선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대회는 결과적으로 큰 마찰없이 끝났으나 당국이 무리한 사전단속을 강행했더라면 사태가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가 당국의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국으로서는 흔히 이런 성격의 대회가 격렬한 가두시위로 번지곤 했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대회규모가 확대되는 것은 우려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어떤 집회나 시위가 합법적인 테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합법적인 집회와 시위는 과감히 허용하고 그것이 불법적인 행위로 번졌을 때는 법에 의해 엄격히 다스리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누구의 반대도 있을 수 없는 대원칙이나 현실적으로는 이것마저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번 인천대회만 해도 그것은 집회신고도 필요없는 옥내집회였다.
그것을 관계 전 기관이 총동원되어 규모축소에 나섰으니 반발이 없을 수 없었고 그런 당국의 과잉반응은 국민의 불신을 낳고 공권력의 권위를 떨어뜨려 결과적으로는 과격시위마저도 정당화시키고 마는 것이다.
집회와 시위는 으레 과격한 가두시위로 번지니 원천봉쇄에 나서고 원천봉쇄하니까 합법적인 절차를 밟는 건 시간낭비라는,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식의 논리가 아직도 지배적인 것이 현실이다.
이것을 깨려면 먼저 당국이 집회와 시위에 관한 인식을 바꾸는 길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국의 인식은 여전히 이러한 주장을 탁상공론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물론 과도적으로는 교통마비 등 거리질서의 혼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회와 시위를 법적 테두리 안에서 자의적인 예단없이 과감히 허용한다면 허가조건을 벗어난 과격행위에 대해선 시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시민의 힘이 합쳐지면 불법적인 행위는 점차 수그러들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시민의 힘이 무섭다는 것은 서울 구로전철역에서의 시민행동에서도 증명되었다. 평소 지하철 근무자들의 주장에도 이해심을 보였던 시민들이지만 그것이 적정한 수준을 벗어난 행동으로 번지자 비록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었으나마 격렬한 의사표시로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당국은 그러한 시민의 힘을 믿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시국치안의 부담을 덜고 민생치안을 강화할 수도 있다.
이치가 그러하거늘 온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정치인의 폭력배 비호규탄 옥내집회마저 「원천봉쇄」를 꾀했으니 시민이 협조는커녕 지지를 얻을 수 있겠는가.
당국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원천봉쇄」라는 말도 사라져야 한다. 허가는 과감히,집회 및 시위는 합법적으로 하는 집시문화의 정착을 위해 당국이 먼저 구태를 벗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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