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의 한국 「푸대접」/이만훈 사회부 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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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워싱턴에서 열렸던 제2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한국의 가장 가까운 우방인 미국이 이렇게까지 한국을 「무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매우 불편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이번 회의가 원래 서울에서 열리기로 돼 있던 것을 미측 사정에 의해 미국의 요청으로 워싱턴에서 열리게 됐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가 시작된 13일 미 국무부는 정례 브리핑을 통해 『지난번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기 때문』이라고 개최지 변경사실을 왜곡했고 특히 우리측 수석대표를 「신임 이상훈 국방부 장관」이라고 잘못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다음날 펜터건에서 양국 합참의장 주재로 열린 군사위원회(MCM)에 앞서 거행된 의장대 사열 때도 「손님」격인 우리의 태극기를 거꾸로 게양했다가 한국기자들의 항의를 받고 바로잡기도 했다.
도대체 이런 「무례」가 있을 수 있는 것인가. 물론 본의 아닌 실수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간에,그것도 동맹국간에 공동이익을 위해 무려 20여 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달려 온 우방의 국방장관을 정부의 책임있는 부처에서 이름을 바꿔 소개하고 가장 의전을 존중해야 할 의장대 사열 행사에서 국기를 거꾸로 단 것은 아무리 선의로 봐도 실수라고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이같은 사실외에도 이번 회의의 주무부서인 미 국방부가 보도자료를 내면서 「동정거리」로 취급,미 언론들에서 단 한 줄의 보도도 없었던 사실은 우리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이번 취재를 위해 서울을 떠나 오기 전 만난 한 고위 미국인사에게 『워싱턴회담 후 체니 국방장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더니 『한국기자들은 무례해서 곤란하다』며 난색을 표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금년 봄에 방한했던 체니 장관의 전방시찰 과정에서 예상외의 질문과 함께 카메라를 들이댄 사실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이 동방 예의지국이라면 미국은 「서방」 예의지국』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워싱턴에서 보고 느낀 미국은 너무도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것들이 우방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재촉하는 요인인 것 같다.<워싱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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