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속셈 다른 “지자제 악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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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쪽 거부감 커 “산 넘어 산” 여/이례적 양보로 구체화 박차 야
지방자치제 문제가 17일 여야총무회담에서 타결됨으로써 지루한 공방을 끝내고 일단 정국이 정상화의 길을 찾게 됐다.
이에 따라 평민당은 19일 국회에 복귀,지난 7월 임시국회 날치기 파동 후 4개월 간의 장외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날 합의가 지자제 실시의 큰 줄거리를 잡긴 했으나 합의내용이 평민당의 등원조건을 총족시키는 수준이어서 문제가 완결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부와 민자당의 일각에서 뒤늦게 협상의 부대조건을 걸고 나온 데서 보다시피 지자제 실시에 대해 여권 내부에는 거부감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관련법 마련을 위한 2단계 협상에서 어떤 파란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정부와 민자당은 당초 지자제협상이 해결 안된 상태에서 평민당이 다른 명분을 찾아 국회에 독자등원 형식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평민당은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온 기초자치단체(시ㆍ군ㆍ구) 정당개입,자치단체장선거의 14대 국회의원선거와 동시실시방안을 15일 오후 전격 철회하는 바람에 쟁점사항이 저절로 없어져 당초 합의한 대로 확정되고 만 것이다.
이에 따라 지자제 일정은 ▲91년 상반기(2∼3월께) 지방의회구성­서울ㆍ5개 직할시ㆍ도의회(광역)와 일반 시ㆍ군ㆍ구의회(기초)선거 ▲92년 상반기 지방자치단체장선거­서울시장ㆍ직할시장ㆍ도지사(광역)와 일반 시장ㆍ군수ㆍ구청장(기초)선거로 이어지게 됐다. 골치를 썩였던 입후보자의 정당공천은 광역단위에만 허용키로 한 합의대로 확정됐다.
내년 2∼3월께 지방의회선거가 기정 사실화되자 행정부 쪽에선 당정협의를 요구,16일 아침 당3역,청와대의 노재봉 비서실장ㆍ최창윤 정무수석,안응모 내무장관,김동영 정무장관이 참석한 회의를 가졌고 17일에도 협상타결에 따른 문제점과 보완대책을 논의했다.
16일 회의에서 안 내무장관과 청와대측은 지자제의 전면실시에 따른 문제점을 지적하고 『내년 봄에 지방의회선거를 실시하면 4조7천억원 정도의 경비가 소요돼 물가를 크게 자극할 것』이라며 제도적 보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윤환 총무는 『지자제 실시를 늦추는 데서 오는 정치적 부담이 엄청날 것』이라며 실시자체의 불가피성을 설득했다.
정부측은 행정의 연속성을 위해 부단체장에 대한 중앙정부임명권 확보,중선거구제 채택,기초단위에서의 완전한 정당참여 배제,선거운동의 정당참여 제한 등을 협상타결 과정에서 평민당측으로부터 확실히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같은 추가조건 요구는 평민당이 지자제문제를 김대중 총재의 대권전략의 일환으로 추진해오고 있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실상은 지자제 실시가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자제 실시가 권력의 일부를 야당측에 넘겨주는 것인만큼 가능한 한 시간을 끌거나 하더라도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일정수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경제계 일각에서 물가불안 등을 이유로 선거연기를 주장하고 있는 것도 큰 이유로 내세웠다.
결국 두 차례 당정회의에서 지자제의 줄거리만 합의해 국회를 정상화시키되,관련법 개정과정에서 여권 입장을 관철키로 했다.
최각규 정책위의장은 『지자제에 관한 그동안의 민자당안은 정당공천 배제를 전제로 한 것인데 광역에서 정당공천제를 도입키로 한만큼 선거제도ㆍ부단체장임명권 문제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며 관련법 개정에서 문제점을 보완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 지방의회선거법과 단체장선거법을 단일법으로 제정하지 말고 분리하며 이번 정기국회에선 의회선거법만 처리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체장선거법은 지방의회선거를 치러본 뒤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선거운동 방법의 경우 주민등록이 돼 있는 지역에서만 가능토록 해 김대중 총재의 순회유세 등 평민당의 바람작전을 막고 선거운동을 가급적 축소한다는 전략이다.
이번에 부단체장 임명을 규정한 지방자치법 개정의 필요성이 정부 쪽에서 강력히 제기된 것도 앞으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ㆍ직할시의 부시장,도의 부지사의 경우 첫 번째 임기에 한해 내무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토록 돼 있는 부칙을 계속 존속시켜 행정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내무부 입장이다.
여권이 이처럼 지자제 실시를 회피하려는 입장에서 여러 가지 복선을 준비하고 있는데도 평민당은 일단 지자제선거가 실제 치러질 수 있게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춰 정당추천제 등 요구를 양보하는 등 유연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영배 평민총무는 『우리 주장만 고집하면 민자당이 이를 트집잡아 지자제를 무산시킬 우려가 있다』며 입장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지자제문제를 계속 고집하고 이번에 국회에 복귀하지 않으면 등원기회를 놓칠 뿐 아니라 내각제 포기 이후의 새로운 대여 전략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자제선거도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기초단위에 정당참여를 배제해도 정당공천의 광역선거와 동시선거를 하므로 정당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행사할 수 있고,국회의원과 단체장의 동시선거 실시문제는 지금 못박지 않고 유보상태로 놔둬도 실리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계산을 한듯 하다.
평민당은 일단 지방의회선거를 통해 정국을 확실한 민자ㆍ평민 2원구조로 만들고 차후를 도모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만약 민자당이 중도에서 어떤 트집거리를 만들어 지자제 실시를 늦추면 총선이나 대통령선거에서 큰 공격거리가 될 것이라는 점도 계산에 넣고 있다.
이날 총무회담에서 지자제의 틀을 만들어 놓았지만 서로의 속셈이 드러나 국회에서의 실무협상에 진통은 상당할 것이며,이것이 지자제 실시자체를 불투명하게 만들 소지도 없지 않다.<박보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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