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칼럼

떠날 때는 말 없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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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잘나갈 때 던질 줄 아는 '절제와 포기의 미학'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남은 자들은 떠난 이를 그리워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게 될 것이다. 자신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에게는 무리한 요구다. 온갖 고생과 노력 끝에 이 자리에 올랐는데, 이제 계속 달콤한 열매를 수확하는 일만 남았는데 떠나라니.

그래서 박수 칠 때 떠나지 않는다고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박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거나 비난과 야유가 난무해도 자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문책 경질을 당하는 마당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억울하다"고 변명이나 일삼는 것은 더욱 문제다. 발버둥 치는 모습이 안쓰럽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현 정권에 그런 사람이 유난히 많다. 그 결과 본인을 망치고 임명권자인 대통령마저 더욱 곤란하게 만든다.

최근 '청와대 브리핑'에 "지금 비싼 값에 집을 샀다가는 낭패 볼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가 분양가 10억원이 넘는 강남의 고가 아파트를 아내 명의로 분양받은 사실이 드러나 물러나야 했던 이백만 홍보수석도 그렇다. 그의 떠난 자리는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그는 퇴임하면서도 언론 탓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마치 자신은 정당한 주장을 했는데 언론의 부당한 공격을 받아 억울하게 쫓겨난다는 듯이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의 평가를 받을 분" "가까이 모신 게 영광스럽고 큰 보람이었다"는 낯간지러운 말도 덧붙여졌다.

이 수석의 전임자인 조기숙 전 홍보수석도 그랬다. 그는 재임 시절 "대통령은 21세기에 계신데 국민은 아직도 군사독재시절에 있다" "보수 우익의 완장을 차고 국민을 호도하는 광신적 색깔론자들" 등의 발언으로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여당 내에서까지 퇴임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그는 고별사에서 "일부 언론과 엘리트 집단에 대해 온몸을 던져 항거했다"면서 일부 언론이 자신과 국민 사이를 이간질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가. 자신들의 말이 국민의 가슴을 난도질한 데 대한 반성은 없이 변명만 늘어놓기로 작정한 것인가.

그러고 보니 스스로 떠나야 하는데 아직 미적거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전효숙씨다. 위헌의 소지가 있는 데다 설령 헌법재판소장으로 임명된다 해도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임명동의안을 강행 처리하기에는 여당의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고, 대통령도 지금 와서 철회하기가 마땅찮다. 자진 사퇴해 여당과 대통령에게 숨통을 터줘야 한다.

보내는 쪽의 문제도 심각하다. 나는 한때 부시 미 대통령과 노 대통령이 비슷한 리더십을 가졌다고 여겼다. 방향성은 달랐지만 고집 세고, 튀고,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런 견해는 수정해야겠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에 패배하자 부시 대통령은 즉각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경질했다. "선거 한두 번 진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거나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과 그 시기 국민의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투의 발언은 하지 않았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버티지도 않았다. 적어도 부시는 민주주의하에서 투표로 나타난 민심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대통령제하에서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장관이나 보좌관 경질로 표시할 수밖에 없다.

떠나보낼 시기를 잘 포착하는 것은 인사권자의 지혜다. 떠날 때 잘 떠날 줄 아는 것은 삶의 지혜다. 반성하기가 그렇게 싫다면 말 없이 떠나라. 떠난 자리에 쓰레기는 남기지 말라. 그게 자신들을 기용한 대통령과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억울하고 원통한 대목이 왜 없겠는가. 그러나 구구한 변명은 뒷모습을 추하게 만들 뿐이다.

김두우 논설위원

*** 바로잡습니다

◆ 11월 20일자 34면 '떠날 때는 말 없이' 칼럼의 본문 중 "보수 우익의 완장을 차고 국민을 호도하는 광신적 색깔론자들"이란 인용 내용은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언이 아니기에 바로잡습니다.